백윤학 지휘자·영남대 교수

"그럼 어떤 걸 하시는 거예요?"

통성명을 하고 지휘자라고 소개한 후 몇 마디 대화가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받는 질문이다. 지휘자가 하는 일이 뭔지 몰라서 물어보는 건 아닐 거다. 쳐다보지도 않는 오케스트라 단원 수십 명을 앞에 두고 아무나 할 수 있는 동작으로 허공에 팔을 흔드는 걸 직업이라고 하니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피아니스트나 성악가는 받지 못하는 일종의 특수한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살짝 웃으며 답해드린다. "글쎄요."

모든 지휘자가 지적하듯 지휘를 배우기는 어렵지 않다. 누구라도 반나절이면 기본적 지휘법을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지휘자가 되는 것은 다른 얘기다. 복잡한 악보를 철저히 분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노련한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납득시킬 만한 음악적 역량과 경험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단순히 하나 둘 셋 박자만 젓는 지휘가 아니라 한정된 시간 동안 몸짓과 표정으로 작품의 아름다움을 단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성악가와 피아니스트 같은 연주자들은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평가받지만 지휘자는 첫 연습 때부터 오케스트라 내 베테랑(전문) 음악가 수십 명에게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 지휘자가 하는 일은 이처럼 겉보기와 다르게 복잡하고 어렵다.

역설적으로 궁극의 지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휘다. 지휘자의 음악적 해석이 아무리 뛰어나도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음악 생활을 한 훌륭한 음악가 수십 명의 자연스러운 음악을 넘어서기 어렵다. 내 지휘만 옳다며 자기 음악을 강요하는 독선 앞에서 오케스트라는 입을 닫아버린다. 중국의 성군인 요임금이 저잣거리에 나가 민심을 살피던 중 들은 노래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밭을 갈아먹고 우물을 파 마시니 내가 배부르고 즐거운데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함포고복(含哺鼓腹). 임금님 눈치 보지 않고 자기 할 일 하며 행복하게 사는 백성을 보며 요임금은 무척 기뻐했다. 훌륭한 지휘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다시 웃으며 답해드린다. "단원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훌륭한 음악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