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타운=조규영 탐험대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남단 케이프타운 간스베이 항구에서 35인승 모터보트가 관광객을 태우고 남쪽 바다로 4㎞를 나아갔다. 혹등고래 서식지를 찾아가는 관광 업체 '다이어(Dyer) 아일랜드'의 고래 관광 프로그램이다.

무분별한 포경으로 1970년대 600마리까지 줄었던 혹등고래 개체 수는 남아공 정부, 시민단체 등의 노력으로 3만여 마리로 늘어났다. 이들의 번식 주기가 최소 2년 이상임을 감안하면 사실 기적 같은 일이다. 영국왕립학회는 "남아공 혹등고래는 올바른 일을 하면 개체 수가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평가한다. 해양생태학을 전공하며 고래를 연구하는 나 같은 이들에게 남아공은 고마운 나라다.

고래는 해양 생태계의 바로미터다. 배설물을 통해 바다에 철분을 제공하고, 호흡을 통해 해양 산성화를 불러오는 이산화탄소를 체내 지방 등으로 흡수한다. 케이프 페닌슐라대 켄 핀들레이 교수는 "철분은 바다 먹이사슬 가장 밑에 있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필수 영양소"라며 "고래 수 감소는 해양 먹이사슬 붕괴를 의미한다"고 했다.

남아공의 어떤 힘이 고래를 되살렸을까. 케이프타운 댄 플라토 시장의 답은 간단했다. "관광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고래 생태를 보존해 관광 자원으로 만드는 게 포경 수익을 수십 배 능가합니다." 1998년부터 시작한 남아공 고래 관광은 연 36만명이 찾는 대표 관광 상품이 됐다. 벌어들이는 돈만 연 820만달러(95억원)가량, 부수 효과까지 합치면 경제 효과는 훨씬 더 크다. 대신, 관광은 정부 통제하에 엄격하게 관리된다. 고래 관광은 28개의 제한된 구역에서만 허가되며 관광용 배는 고래에게 50m 이내로 접근해선 안 된다.

혹등고래는 국내외서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돼 있다. 남아공에서도 1970년대에 600마리로 줄었지만 최근 3만여 마리까지 개체 수를 회복했다.

정부는 매년 고래 관광업체 허가증을 갱신하면서 해양 과학자를 허가 논의에 참여시킨다. 정부, 기업, 학계, 시민단체등 180여명이 참여한 협의체 '실험실'은 고래 보호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2014년 출범한 협의체는 포경보다 관광이 가져다 주는 이익을 강조하며 남아공 해양 연구, 고래 보호 등과 관련한 입법을 하는 데도 1등 공신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