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해리 왕손(35)과 메건 마클(38) 부부가 지난 8일 왕실에서 독립하겠다고 발표한 후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해리의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93)이 13일 마지못해 이들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왕실 내 갈등이 일단 봉합되는 듯했다. 하지만 메건이 머물고 있는 캐나다를 비롯한 영(英)연방 국가 언론들이 이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이들에게 동정적이었던 여론도 싸늘하게 돌아서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15일 "메그시트(Megxit·메건의 왕실 탈퇴)가 국제 소요(global uproar)로 번졌다"고 했다.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이 2017년 11월 영국 런던 켄싱턴궁에서 결혼 계획을 발표하며 웃고 있다.

영국 밖에서 가장 여진이 큰 곳은 캐나다다. 해리와 메건이 독립 후 살겠다고 한 곳으로, 이들은 이미 지난 연말 이곳으로 이주를 마쳤다. 캐나다가 영연방 53국 중 하나란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는 1867년 독립했지만 영 왕실에 우호적이어서 왕족들이 편하게 드나들곤 했다. 지난 8일 해리의 독립 발표 때 "캐나다 총독으로 임명하자"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며칠 새 여론이 뒤집혔다. 해리와 메건이 할머니 여왕이나 아버지 찰스 왕세자(70)에게도 알리지 않고 야반도주하듯 이주한 점, 미국 오프라 윈프리 쇼 인터뷰로 왕실의 치부를 드러낼 것처럼 시사한 점, 이들의 최종 목적지가 캐나다가 아니라 미 LA라는 점 등이 드러나면서다.

캐나다 최대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은 14일 '영국 왕족은 캐나다에서 살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해리와 메건이 왕실 고위직을 유지한 채 캐나다에서 살겠다는 건 우리가 영국 지배에서 독립한다는 헌법 정신을 건드리는 것"이라며 "우린 영국 왕을 상징적 수장으로 인정할 뿐 그 외의 왕족을 섬겨야 할 의무 따윈 없다"고 했다.

이후 이 신문엔 "해리가 캐나다 왕이 되겠다는 거냐" "캐나다가 영국 왕실 부적응자의 갱생시설인가"란 독자 기고가 폭주했다. 또 일간 토론토 스타가 긴급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국민 73%가 "해리와 메건에게 예산 지원을 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캐나다 법학자들 사이에선 이들이 캐나다에서 왕족으로 살 경우 위헌 소송을 제기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돈 문제도 캐나다의 뇌관을 건드렸다. 영국 경찰은 해리 가족의 경호에 연 8억~9억원을 썼다고 한다. 통상 무장경찰 6인 팀이 24시간 요인 경호를 펼치고, 해외 순방 땐 10명까지 증원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공무를 거부하고 외국에 간 왕족에겐 한 푼도 못 준다'는 분위기다. 불똥은 캐나다로 튀었다. 쥐스탱 트뤼도(48) 캐나다 총리는 이들 부부 체류비를 예산으로 대주겠다고 했다가 여론이 들끓자 "아무것도 결정 안 됐다"고 진화했다.

해리 측은 '왕실에서 재정적으로 독립하겠다'고 했지만, 여러 특권적 지위가 유지될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이들은 8일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우리는 유엔의 국제 보호(정상과 국제기구 수장 경호를 각국이 협조하는 협약)대상"이란 문구를 올렸다가 비난을 받자 이틀 뒤 삭제했다.

호주·뉴질랜드 등 다른 영연방도 비판적으로 지켜보고 있다. 주간지 뉴질랜드 리스너는 16일 "영연방의 결속력은 여왕에 대한 애정에서 나올 뿐 왕정에 대한 복종과는 다르다"라며 "해리와 메건이 파트타임 왕족으로도 특권을 누릴 거라고 여겼다면 오산"이라고 했다.

영 매체들은 메그시트가 지난 3년간 영국을 혼란에 몰아넣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내전(內戰)'처럼 전개되고 있다고 본다. 브렉시트를 옹호했던 보수층은 메건을 비난하고, 브렉시트에 반대한 진보층은 왕정을 비난하며 이념·세대 간 분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도 "메그시트는 왕족조차 영국의 핵심 시스템을 거부한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브렉시트 위기를 극복하고 '대영제국의 부활'을 꿈꾼 영국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했다.

영 시사지 스펙테이터는 15일 '메그시트는 외교적 악몽이 될 수 있다'는 기사에서 유명 왕족의 이탈은 영국에 위협이 되기 쉽다고 전망했다. 1936년 미국 이혼녀와 결혼하려 왕위를 버린 에드워드 8세가 나치 옹호 발언을 하고 돈 문제로 구설에 오른 것,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1996년 이혼 후에도 왕실과 갈등을 빚은 일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