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안병현

연말정산 시즌이 왔다. 세금 없는 공산사회에서 온 내게 세금은 여전히 어렵고 낯설다. 해외 공관에 있을 때도 외교관은 면세 대상이라 세금 낼 일은 없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국가가 거둬들인 세금을 연말에 다시 따져 보고 실소득보다 근로소득세를 많이 냈으면 그만큼 돌려주고 적게 거뒀으면 더 징수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2016년 여름 한국으로 귀순해 2017년 초부터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1년 동안 자문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2018년 1월 연구소 행정팀에서 연말정산을 한다면서 세금을 돌려받거나 더 낼 것이 없는지 잘 따져 보면서 신고하라고 알려줬다. 돌려받지는 못해도 더 내지는 말아야 하지 않나 싶어 일일이 따져 보고 신고했다. 결국 소비가 많지 않아 세금을 더 내야 했다. 국세청 전산망이 나의 소득과 지출을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 국가가 세금을 거두는 데는 정말 열성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제야 북한에서처럼 돈을 벌어 장롱에 현금으로 숨겨두고 있으면 다 자기 것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지난해 3월 '남북함께시민연대'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고 직원을 3명 뒀는데 급여 대장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직원 근로계약서에 월급이 나오는데, 급·상여 대장을 보니 기본급 외에 상여금, 식대가 있는가 하면 차를 가진 사람은 자가운전 보조금, 자녀가 있는 직원은 육아 수당까지 있었다.

월급은 같은데 자가운전, 육아 수당을 빼니 기본급이 달라지는 것이다. 기본급을 같게 지급하면 되는데 이렇게 복잡하게 세분해 놓은 이유를 물어봤다. 자가운전 보조금 20만원과 육아수당 10만원 등은 비과세소득으로 잡혀 근로소득이 줄어든다고 했다. 매월 월급을 줄 때 원천징수하고 4대 보험을 빼는 방법도 신기했다. 머리가 아파 결국 세무 대리인에게 다 맡겨 버렸다.

며칠 전 직원들에게 연말정산에서 환급받을 것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대부분 받을 것도 더 낼 것도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한 직원이 바뀐 규정을 말했다. 지난해 7월부터 박물관, 미술관 입장료를 신용카드로 결제한 경우 30%를 소득에서 빼주고, 지난해 2월 이후 신용카드로 산 면세품을 소득공제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직원들이 언제 그렇게 법이 바뀌었느냐며 놀랐다. 나는 한국 세금 구조도 아직 잘 모르면서, 한국에서 몇 십 년 산 직원에게 신고를 잘못해서 세금을 더 돌려받으면 고의가 아니라도 환급금의 10%를 가산세로 물어야 하니 주의하라고 훈계했다.

북한 외교관으로 유럽에서 12년 생활했다고 하지만 대사관은 면세 대상이라 상주국과 세금으로 엮일 일이 별로 없었다. 분기에 한 번씩 상주국 외무성에 대사관 차 운영을 위해 지출한 휘발유, 경유 구입 영수증을 제출해 부가세를 돌려받거나 담배나 주류를 면세로 구입하는 정도였다.

자본주의 사회의 세금을 간접 경험해본 적은 있다. 대사관 내부 시설이 고장 나 현지 배관공을 부를 때였다. 그들은 가격을 낮춰주겠으니 현금으로 수리비를 달라고 했다. 세금 때문이었다. 나중엔 우리가 먼저 영수증을 받지 않겠으니 수리비를 낮춰달라고 흥정했다. 영국 사람들조차 세금 내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니 인간의 본능인가 싶었다.

런던에는 승용차가 시내 중심으로 들어갈 때 혼잡세를 내는 특이한 규정이 있다. 북한은 대사관 개설 이후 지금까지 혼잡세를 내지 않았다. 누적된 과태료가 수십만 파운드에 이른다. 영국 정부에선 과태료를 내라고 요구하지만 북한 대사관은 상주국에 세금을 내지 않게 되어 있다고 버틴다. 영국 정부에서 "혼잡세는 중앙세가 아니라 런던 시청의 지방세"라면서 "대사관은 중앙세는 면제되나 지방세는 내야 한다"고 해도 못 들은 척한다.

앞으로 한국 주도의 통일이 되면 영국이 한국 정부에 북한 대사관의 밀린 혼잡세를 내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까짓 것 평화적으로 통일만 된다면야 밀린 런던 혼잡세 정도가 무슨 대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