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70) 시인이 열세 번째 시집 ‘당신을 찾아서’(창비)를 냈다. 수록된 시 125편 중 100여 편이 미발표작이다. 정 시인은 “요즘 문예지 편집자들이 젊어서 그런지 나한테 청탁을 잘 하지 않는다”며 웃은 뒤 “시집 출간도 신작 발표의 한 방법”이라고 했다. 신작 시집의 열쇠어는 ‘당신’이다. 시인은 ‘만나고 싶었으나 평생 만날 수 없었던/ 당신을 향해’라고 안타까워하거나 ‘물거품처럼 당신을 떠나보낸 뒤/ 나는 이리저리 진눈깨비로 흩날리거나’라고 토로한다. 그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나무에게 달려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으나’라면서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나는 늙었다/ 늙은 어린이가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당신’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시인의 하느님이기도 하고, 추억의 연인이기도 하고, 시인이 꿈꾸는 삶의 초상이기도 하다. ‘당신’은 만해 한용운의 ‘님’처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시인은 “궁극적으로는 사랑을 구현하는 진리적 존재, 어쩌면 모성적이고 절대적 사랑의 존재일 수도 있겠다”고 덧붙였다. 시인은 지난해 모친을 여의고 나서 쓴 사모곡(思母曲) 여러 편을 시집에 실었다. ‘돌아가신 어머니/ 반짇고리에 남은/ 다 해진 골무 하나/ 내 양복 단추와/ 구멍 난 양말을 기워주시던/ 내 눈물도 평생 기워주시던/ 어머니의 골무’라고 했다.

정호승 시인은 “시 속의 ‘당신’은 사랑을 구현하는 진리, 절대적 사랑의 존재일 수도 있다”고 했다.

시인은 사랑 못지않게 고통을 노래하면서 끔찍하게도 '잘린 머리'란 시어를 애용했다. '잘린 내 머리를 두 손에 받쳐들고/ 먼 산을 바라보며 걸어간다'고 했다. '어떤 성인(聖人)은 들고 가던 자기 머리를/ 강물에 깨끗이 씻기도 했지만/ 나는 강가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영원히 쓰러져 잠이 든다/ 평생 당신을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하고/ 나뒹구는 내 머리를/ 땅바닥에 그대로 두고'라는 것. 시인은 "오늘을 사는 내가 머리가 잘린 채, 잘린 그 머리를 두 손에 들고 어디론가 한없이 걸어가는 고통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고 밝혔다. "설화(說話)지만 서기 300년대 프랑스 파리 첫 주교였던 생드니 성인(聖人)은 이교도 로마군의 침략에 의해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참수당했다. 그러나 그는 참수당한 자기 머리를 두 손에 들고 걸어갔다. 생드니 성인의 고통의 본질은 바로 사랑이다. 또 경주 지역에 가면 불두(佛頭)가 잘린 '머리 없는 돌부처'들이 유난히 많다. 그 부처님들의 고통을 생각했다. 그것 또한 현실적 존재의 고통을 위로하는 고통이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으면 고통이 있을 수 없으니까. 부처님들이 그런 고통을 통해 오늘의 나와 우리를 사랑한다고 여겼다."

이번 시집의 핵심어는 ‘용서’이기도 하다. ‘감사하다/ 내 가슴에 분(憤)이 맺히는 게 아니라/ 이슬이 맺혀서 감사하다/ 나는 이슬이 맺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시인은 “인간의 사랑엔 성공과 완성이 없다”며 “그 과정 속에 실패가 있고 배반이 있고 용서가 있는데 어쩌면 그 과정이 바로 사랑의 성공이자 완성일 것”이라고 ‘용서’의 도(道)를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