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소월리 목간 적외선 사진

최근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사람 얼굴 모양 토기와 함께 출토된 목간의 경우 경산 인근 지역의 토지현황을 조사한 6세기 문서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현장에서 업무용 수첩처럼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은 16일 '경산 소월리 목간의 기초적 검토'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소월리 목간의 내용 및 용도 등과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목간의 제원은 최대 길이 74.2㎝, 최대 직경 4.3㎝, 최소 직경 2.8㎝로 단면이 원형인 막대형이며 답(畓), 전(田), 삼(三), 제(堤) 등의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어 토지와 연관된 내용이 기재된 문서 목간이라고 추정됐다.

또 목간의 면은 5면, 확실하게 판독됐거나 추정한 글자 수는 전체 98자이며 A면 21자, B면 41자, C면 11자, D면 4자, E면 21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목간의 면은 최초에는 6면인 것으로 여겼지만 이후에 5면으로 정리됐다. 글자 연습을 한 2개의 면이 존재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그 가운데 '제(堤)'와 '사(四)'를 연습한 1개의 면이 본문과 같은 면에 있는 것으로 정정됐다.

또 목간의 전반적인 내용은 잘 정리한 문장이라기보다 단편적인 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짐작됐다. 글자의 줄을 맞추지 않았다는 점, B면 말미에 글자가 두 줄로 늘어난다는 점, D면과 E면 마지막 부분이 글자를 연습한 곳으로 추정된다는 점 때문이다.

목간의 내용이 기재된 형식은 '지명+토지 종류+토지 면적'으로 정리됐다. 목간에 등장하는 '답(畓)'자 등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골짜기에 형성된 주거지와 그 아래쪽에 축조된 '제(堤)'를 중심으로 펼쳐진 전(田)과 답(畓)으로 이뤄진 경산 소월리 인근 지역의 6세기 무렵 풍경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됐다.

목간의 출토 층위나 유물이 6세기대로 추정된다는 점, 비교 자료가 되는 월성 해자 목간의 작성시점이 보통 6세기 중반∼7세기 전반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을 바탕으로 6세기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짐작됐다.

다만 보고서는 목간이 형태나 내용 등을 바탕으로 볼 때 정식 문서는 아니며 이를 작성하기 위한 기초자료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전 주무관은 "일반적으로 목간은 물품 꼬리표, 글자 연습, 간단한 내용 보고하는 용도로 쓰였다"며 "'지명+토지 종류+토지 면적'이라는 공통된 기재 방식이 나타나는 것은 문서 작성을 위한 최소한의 형식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재된 형태가 정연하지 않고 줄 구분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 내용을 즉흥적으로 썼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마도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실제 현장을 둘러보면서 업무용 수첩처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소월리 목간은 지방의 곡(谷) 단위까지 토지 면적을 파악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라며 "비록 통일 이후에 작성된 신라 촌락문서처럼 인구나 우마(牛馬)의 수, 그 변동을 기록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지만 지방 말단 조직에 대한 토지 현황 조사가 6세기에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한국목간학회 함께 오는 18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세미나실에서 '2019년 동아시아 신(新)출토 목간'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세미나에서는 이번 '경산 소월리 목간의 기초적 검토' 보고서를 비롯해 '경산 소월리 유적 발굴 보고'(화랑문화재연구소 김상현), '2019년 중국 출토 간독자료'(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김진우), '2019년 일본 출토 목간 자료'(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하시모토 시게루) 등의 보고서가 발표된다.

또 같은 날 오후 2∼3시 경주문화재연구소 천존고 회의실에서는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의 실물도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