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인 리비아에서 내전(內戰)으로 인한 유혈 사태가 수습되지 않고 있다. 리비아를 철권 통치하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2011년 제거됐지만 통일된 민주 정부가 9년째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최대 군벌인 리비아국민군(LNA)이 동부를 중심으로 국토의 4분의 3을 장악하며, 유엔 지원하에 서부를 통치하는 리비아통합정부(GNA)와 대치하고 있다. 주변국과 열강들도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리비아 내 양대 세력을 제각각 편들고 있어 사태가 더 꼬이고 있다.

리비아국민군을 이끄는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은 13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리비아통합정부 대표단과 7시간 동안 협상을 벌인 뒤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고 리비아로 돌아가 버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중재에 실패한 것이다. 이튿날인 14일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양측을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11국 대표를 오는 19일 베를린으로 초청해 내전 수습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했다. 국민군의 하프타르 장군은 베를린에 가겠다며 참석 의사를 밝혔지만 결과는 아무도 속단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발발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시리아의 전철을 리비아가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리비아에서는 2011년 북아프리카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을 맞아 42년간 권좌에 있던 카다피가 축출됐다. 환호한 순간은 잠깐이었다. 140여 부족이 군웅할거했고, 이슬람계와 비이슬람계 갈등도 심각했다. 무법천지가 되면서 2014년쯤에는 무장세력 1700여 개가 난립했다.

보다 못한 유엔이 이슬람계라도 합치도록 유도해 수도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서부에 2015년 통합정부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통합정부는 동부 지역에는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2014년 무렵부터 국민군을 이끌던 하프타르 장군이 많은 무장단체를 복속시키며 동부를 대부분 장악했기 때문이다. 양측은 한동안 잠잠했지만 작년 4월 국민군이 통합정부의 심장부인 수도 트리폴리를 향해 진격하면서 리비아가 다시 전쟁터로 변했다. 이후 양측 교전으로 2000여 명의 군인과 약 300명의 민간인이 숨지고 15만명이 피란길을 떠났다.

서구 열강들이 리비아 사태를 중재하겠다며 높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리비아의 원유를 탐내기 때문이다. 리비아산은 중동산보다 유황 성분이 적어 품질이 우수하다. 지리적으로도 리비아는 중동보다 유럽·북미에 가까워 리비아산 원유를 들여올 경우 운송 비용이 저렴하다. 국민군이 반군(反軍)이지만 서구 열강이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미 리비아 내 대다수 유전(油田)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에서 중앙에 위치한다. 아프리카 신흥시장을 뚫고 싶어하는 서구 국가들이 관문으로 활용하고 싶어한다.

유럽 국가들이 리비아에 관심을 갖는 배경엔 내전이 확대되면 난민들이 대거 지중해를 넘어올지 모른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리비아와 거리가 먼 독일이 적극 나선 이유도 난민 유입을 막으려는 목적 때문이다. 유럽에 유입된 시리아 난민은 3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리비아 난민까지 쏟아지면 난민 수용을 둘러싼 유럽 내 갈등이 더 첨예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유엔 산하 국제이주기구(IOM)는 올 들어 2주 동안에만 내전을 피해 리비아를 떠나려 시도한 사람이 1000명을 넘어섰다고 했다.

그러나 리비아와 연관을 맺은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휴전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 않다. 우선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맞서고 있다. 이탈리아는 20세기 초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리비아를 식민 통치했고, 지금도 국영 석유회사 ENI의 공장이 트리폴리 쪽에 있다. 그래서 통합정부를 지원한다. 반면 아프리카 테러 단체 소탕에 앞장선 프랑스는 여러 무장 정파를 제거한 국민군을 고맙게 여겨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는 일찌감치 하프타르 측 국민군에 첨단 무기를 제공해왔다.

중동 역시 리비아를 둘러싸고 분열돼 있다. 통합정부의 가장 큰 지원 세력은 세계 최대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다. 무슬림형제단과 가깝고 오스만제국 시절 리비아 북부를 지배했던 터키가 통합정부를 지원해 지난 5일 통합정부 측에 파병을 시작했다. 반면 무슬림형제단 및 터키와 사이가 나쁜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는 국민군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