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 여자만(汝自灣) 장도(獐島)에 사는 박씨 집에는 모두 4척의 뻘배가 있다. ‘뻘’은 갯벌을 말한다. 뻘배〈사진〉는 갯벌 위를 오갈 때 쓰는 이동수단이다. 길이 2m, 폭 45㎝ 정도로 앞부분을 45도 내외로 구부려 갯벌을 헤치며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넓은 판자의 앞을 구부려 만들어서 ‘널배’라고도 한다. 갯벌은 펄갯벌, 혼합갯벌, 모래갯벌 등이 있는데, 이 중 뻘배는 펄갯벌에서 이용한다. 펄갯벌이 발달한 여자만이나 득량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큰 바다로 나가는 입구는 좁고 안은 넓은 항아리 모양인 곳이다. 이곳 갯벌은 뻘배를 타지 않고 들어가면 늪처럼 빠져들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장도는 집집마다 가족 수보다 뻘배가 더 많다. 이 섬에서 뻘배를 타지 못하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 꼬막을 캐고, 낙지를 잡고, 그물을 털기 위해 갯벌로 나갈 때는 반드시 뻘배를 이용한다. 마을 공동어장에서 꼬막을 캐거나 어장을 청소하는 등 울력할 때도 자가용처럼 뻘배를 앞세운다. 섬에선 보행기에 의지해야 하는 어머니들도 뻘배만 타면 갯벌에서 쌩쌩 달린다. 뭍에서 시집온 어머니들이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이 뻘배 타는 법이었다. 밥은 못 지어도 용서가 되지만 뻘배를 타지 못하면 구박받는 것이 장도였다.

뻘배는 보성군 벌교읍뿐 아니라 순천시 벌량면, 여수시 율촌면과 소라면, 고흥군 과역면과 남양면 등 어촌마을 포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중 '보성뻘배어업'은 2015년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본의 세토내해 이사하야만이나 유럽의 북해 네덜란드 갯벌에서도 뻘배를 볼 수 있다. 이 지역들에서는 뻘배를 해양스포츠용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한쪽 발을 뻘배 위에 올리고, 다른 한 발로 갯벌을 밀며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 편하고 쉬워 보인다. 장도 부수마을에서 뻘배를 타봤다. 힘들게 뻘배를 타고 20여m 갯벌 가운데로 나갔다. 그런데 돌아올 수가 없었다. 기진맥진한 데다가 뻘배를 돌릴 수도 없었다. 겨우 주민의 도움을 받아 끌려 나왔다. 뻘배는 힘이 좋다고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로 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