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가냘픈 소녀가 스케이트보드 위에 올라 힘차게 발을 굴렀다. 벽을 타고 훌쩍 하늘로 치솟는 그를 중력이 간신히 붙들었다. 키 150㎝, 몸무게 33㎏인 초등학교 6학년 조현주(13)는 지난 3일 오후 찬바람 부는 경기 고양시 대화 레포츠 공원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었다. 혼자 노는 동네 꼬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국가대표 훈련' 중이다. 스케이트보드 한국 국가대표 선수 5명 중 조현주는 유일한 여자다. 초등학생은 임현성(13)까지 둘이다. 스케이트보드가 도쿄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조현주는 꿈에 부풀어 있다. 세계적으로 남자에 비해 여자 선수층이 얇아 대표팀은 그의 올림픽 진출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고 있다.

"공부만 하지 않아도 돼, 올림픽도 갈 수 있잖아" - 유일한 여자 스케이트보드 국가대표인 초등학교 6학년 조현주가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대화 레포츠 공원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날아라 현주의 수퍼보드

초등학교 2학년 때 TV에서 스케이트보드 타는 소년을 봤다.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보드를 안고 TV에 나온 장소를 무작정 찾아갔다. 그곳에 강습소가 있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당장 보드 타러 달려가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매일 학교(서울 마포구 동교초) 마치고 죽전, 대화까지 가서 5시간씩 보드를 탄다. 바퀴가 닳아 매달 새 보드를 산다.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를 뒤지고 보드 타는 오빠들에게 물어가며 하나씩 기술을 익혔다. 아버지 회사원 조병무(56)씨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조현주는 언니와 12세 차이 나는 늦둥이 막내다. 부모는 막내가 공부에만 얽매이지 않도록 자유롭게 키우려 했다. 원래 조현주는 축구를 좋아했는데 선수로 뛰기엔 체격이 작았다. 아버지 조씨는 "스케이트보드가 멋있어 보여 배워 보라고는 했지만 '시키지 말 걸' 후회한 날도 많다"고 했다. 발목, 무릎, 골반뼈까지 조현주는 부상을 달고 산다. 보드가 얼굴로 떨어져 뺨이 심하게 부어오른 적도 있다.

"그래도 다음 날 아침부터 또 보드 타러 가고 싶었어요." 딸은 강심장이다. "무섭죠. 무섭고 어려우니까 더 재미있어요. 수백 번 넘어지다가 딱 한 번 기술에 성공했을 때 정말 기분 좋아요." 조현주는 "무서워서 망설이다가도 갑자기 어느 순간 '지금 시도하면 성공할 것 같다'는 느낌이 온다"고 했다. 그 순간을 꽉 붙들어 뛰어드는 것이다.

◇올림픽, 밀레니얼 세대를 잡아라

스케이트보드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전략적으로 추가한 올림픽 종목이다. 동네 청소년들의 길거리 문화가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은 셈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9세, 11세 어린 선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현주도 2018년 국가대표가 됐다.

지난해 상하이 반스 파크 시리즈 프로 투어 준결선 12위, 싱가포르 반스 파크 시리즈 아시아 대회 은메달을 기록했다. 올림픽 포인트 랭킹은 현재 80명 중 53위다. 작년엔 올림픽 포인트가 주어지는 1개 대회만 나서 아직 랭킹이 낮지만, 올림픽 출전 선수가 결정되는 5월까지 파크 종목에 집중하며 3~4개 대회를 더 치를 예정이다. 올림픽은 파크·스트리트 세부 종목별로 남녀 각각 20명이 나간다. 미국, 일본, 브라질 같은 강국도 국가당 최대 3명만 출전권을 얻는다. 조현주가 올 시즌 대회에서 꾸준히 중위권에 든다면 올림픽 무대를 기대해볼 수 있다.

조현주는 "올해가 아니더라도 올림픽에 나가 한국 사람들에게 스케이트보드가 뭔지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여자라서 힘든 점은 없다고 했다. "학교 체육 시간에 남자애들이 뭐든지 나한테 시범 보여달라고 해요. 국가대표라도 배드민턴 같은 건 잘 모르는데." 같이 보드 타는 또래 여자 친구들이 없어 외롭기는 하다. 따라 배워보겠다는 친구도 있었지만 몇 번 해보다 다들 그만뒀다.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넘어지는 법만 익히면 크게 위험하지 않아. 새 기술 연습할 때도 낮은 곳부터 시작해 조금씩 올라가면 무섭지 않아. 하루종일 공부만 하지 않아도 돼. 올림픽도 갈 수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