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미아 알리자데 제누린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머리에 히잡을 두르고 경기를 뛰었다.

"나는 이란에서 억압받는 수백만 여성 중 하나다. 그들(이하 이란 당국)은 내 메달을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다리를 그렇게 쭉쭉 뻗는 것은 여자의 덕목이 아니다'라고 모욕했다."

이란 최초의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태권도 선수 키미아 알리자데 제누린(22)은 12일(현지 시각) 자기 인스타그램에서 이같이 폭로하며 이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알리자데는 18세이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태권도 57㎏급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스타다. 이란이 처음 참가했던 1948년 런던올림픽 이후 이란 사상 첫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머리에 히잡을 두르고 그 위에 헤드기어를 쓴 채 발차기하는 알리자데 모습은 당시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며 여성의 스포츠 활동을 억압해 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야 양궁의 리다 파리만이 이란 여성으로는 첫 올림픽 출전 기록을 썼을 정도다.

알리자데는 이란 여성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하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리우 올림픽 직후 이란 수도 테헤란 거리 곳곳엔 그의 사진이 걸렸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지난해 12월 그를 '2019년 여성 100인'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여성을 차별하는 이란 사회 풍토는 그의 올림픽 영광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알리자데는 "나는 그들이 말한 대로 옷을 입었고 그들이 지시하는 대로 말했다. 그들이 명령하는 모든 문장을 나는 앵무새처럼 말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우리(여성 선수)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라며 "그들은 내 메달을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히잡에 집어넣었고 자신의 공으로 돌려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이란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나는 태권도와 안전, 행복, 그리고 건강한 생활을 원한다. 비록 이란을 떠나게 됐지만 이란의 자식으로 남겠다"고 설명했다.

이란의 키미아 알리자데 제누린(왼쪽)이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 태권도 57㎏급 8강에서 스페인 선수를 상대로 발차기를 하는 모습.

알리자데는 자신의 행선지를 밝히지는 않았다. 이란 ISNA통신에 따르면 알리자데는 이달 초 2020 도쿄 올림픽 대비 훈련을 위해 네덜란드로 떠난 뒤 행적이 묘연하다. 그는 리우 올림픽에 이어 2017년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62㎏급에선 은메달을 차지하며 정상급 실력을 보여줬다. ISNA통신은 알리자데가 오는 7월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기를 원하지만 이란 국가대표로는 뛰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2016 리우 올림픽에 이어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결성되는 '난민 대표팀' 자격으로 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리자데의 깜짝 발표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우크라이나 여객기 오인 격추 인정 이후 하루쯤 뒤에 나왔다. 희생자 중 이란인이 82명으로 제일 많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아야톨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를 규탄하는 시위가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 정부는 알리자데의 망명이 반정부 시위에 불을 지피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란이 여성들에게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강한 여성들을 계속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