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직원 A씨는 지난주 휴대전화 한 대를 새로 구입, 이른바 '투폰족(族)' 대열에 합류했다. 새 휴대전화는 회사에서만 사용하고, 퇴근할 때는 회사 책상에 두고 간다. 이유는 단 하나, 회사가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도입한 업무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J크루(crew)' 때문이다. 이 앱은 동시에 설치되는 '관리 앱'(MDM 앱)을 통해 스마트폰에 대한 사실상 '무한 권한'을 회사에 제공한다. 관리자는 원격으로 앱이 깔린 스마트폰에 담긴 개인 데이터 수집·삭제는 물론, 앱 설치·관리까지 할 수 있다. A씨는 "앱을 깔고 싶지 않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업무를 볼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이건 고용노동부 신고감"이라고 했다.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배포하는 업무용 스마트폰 앱들이 최근 잇달아 사생활 침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앱을 설치하는 순간 스마트폰에 담긴 위치 정보, 전화번호, 사진 등 민감 정보들이 회사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연구소나 생산 시설 등 특정 장소 근무자들에게 휴대전화 카메라 또는 녹음 기능을 차단하는 '보안 앱'을 의무화한 것은 2010년대 초반부터지만, 최근에는 더욱 광범위한 권한을 요구하는 앱을 일반 사무직군으로까지 확대하면서 사생활 침해 논란도 더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업무용 보안 앱을 도입하는 표면적 취지는 대동소이하다. 직원들이 사내 공지사항 확인, 연차 사용, 업무 매뉴얼 확인 등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기업이 앱을 사용하지 않는 직원에게 불이익을 제공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제주항공의 경우 J크루 도입과 동시에 모든 사내(社內) 공지문은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전달하고, PC를 통한 공지문 전달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직원들에게는 '(1월) 12일까지 앱을 설치하지 않은 경우, 개인은 물론 소속 팀에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안내도 내보냈다. 인터넷 익명 게시판 등에 정책에 대한 비판이 잇달았다. 그러자 제주항공은 공지문을 다시 PC로 볼 수 있도록 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거나 통제하는 어떤 기능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직원들은 "권한이 있다는 건 언제든 사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업무용 앱은 스마트폰의 위치 정보나 저장 공간, 통화 내용, 전화번호 등에 대한 권한을 요구한다. 서울교통공사는 제주항공과는 달리 직원이 업무용 앱을 쓰지 않더라도 PC를 통해 통상적인 업무 처리는 가능하다. 하지만 앱을 설치하지 않은 직원에게는 월 4만원씩 지원되는 통신비를 주지 않는다. 아시아나항공도 재작년 7월 업무용 앱을 업데이트하면서 스마트폰 내 데이터 수집·삭제 기능을 추가했다가 사찰 논란을 빚었다. 당시 아시아나에서는 경영진 갑질에 대한 직원들 폭로가 잇따르고 있었다.

직원들은 "사적 소유물인 개인 휴대폰에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업무용 앱 설치를 강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법원 판단도 직원들 주장과 같았다. 2017년 회사에 과다한 정보 접근 권한을 부여한 업무용 앱 설치를 거부했다가 징계를 당한 KT 직원 이모씨가 제기한 징계취소 소송에서 이씨 손을 들어줬다. KT는 '조직 내 질서 존중의 의무 위반'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활발하다. 아이폰 제조사인 미국 애플은 지난해 6월 하나의 휴대전화를, 회사가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업무용 계정'과 전적으로 휴대전화 주인만 이용할 수 있는 '개인용 계정'으로 분리하는 새 보안 모델을 발표했다. 직원이 출근해서 '업무 계정'에 로그인한 뒤, 퇴근 때 로그아웃할 때까지 생성된 정보만 회사에 공개되는 방식이다.

유성민 IT(정보기술) 칼럼니스트는 "업무용 앱에 어떤 권한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 기업들이 회사 구성원들과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