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찾은 강원도 A군(郡)의 한 면사무소. 사방이 논밭으로 둘러싸인 2층짜리 건물 안은 절간처럼 조용했다. 이곳의 공무원 정원은 18명인데, 오후 2~3시 무렵 앉아서 일하는 직원은 4~5명뿐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모여 잡담을 하거나 밖에서 담배를 피웠다. 2시간을 지켜봤지만, 찾아온 민원인은 제로(0)였다. 이 면(面)의 지난해 말 기준 인구는 2390명으로 2016년 인구(2435명) 대비 45명(1.8%) 줄었다. 하지만 면사무소 직원 수는 같은 기간 13명에서 18명으로 5명(38.5%) 증가했다. '잉여 공무원'은 면사무소뿐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같은 날 찾은 A군의 공공도서관엔 이용객보다 직원이 더 많았다. 일반인이 이용하는 열람실은 60석 중 2명만 앉아 있었는데 안내 데스크에는 그보다 많은 직원 3명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도서관 1층 행정실에는 직원이 6명 배정돼 있었는데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1명뿐이었다.

'공무원 17만명 증원'이라는 공약을 내건 문재인 정부 들어 전국적으로 공무원 수가 빠르게 늘면서 대한민국이 '공무원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 저성장에 따른 고용 감소 위기를 정부가 단순히 공무원 수를 늘리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할 일은 없는데 인력은 넘치는 '공무원 포화' 현상이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A군과 같은 지방의 시군 지역은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고, 인구는 고령화되면서 규모가 축소되고 있지만 공무원만큼은 꼬박꼬박 늘고 있다.

12일 본지가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실에 의뢰해 특별·광역시를 제외한 전국 시군 152곳의 주민 수와 공무원 수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문 정부 들어 지난 2년간(2017~2019년) 인구는 줄고, 공무원이 늘어난 지역이 113곳으로 4곳 중 3곳(74.3%)에 달한다. 직전 2년(2015~2017년)간 89개(58.6%)였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 시군 113곳의 총인구는 2017년 말 1481만명에서 지난해 6월 말 기준 1449만명으로 32만명 감소(-2.2%)했는데, 같은 기간 공무원 수는 9만7545명에서 10만2321명으로 4776명(4.9%) 늘었다.

전국 시·군 152곳 가운데 지난 5년 사이 A군처럼 인구가 줄었는데 공무원이 늘어난 곳은 106곳(69.7%)에 달한다. 지방 소도시 10곳 중 7곳에서 '인구 감소, 공무원 증가'라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2015~2019년 사이 5년 연속으로 전년 대비 인구가 줄면서도 연속으로 공무원 수가 늘어난 곳도 59곳(38.8%)이나 된다. 특히 경기도 군포시, 전남 신안군, 경북 영주시 등은 줄어든 인구에 비해 늘어난 공무원 비율이 크게 높았다. 군포시의 경우, 지난 2년간 인구가 2% 줄어드는 동안(28만1205→27만5546명) 공무원은 11.9% 늘었다(808→904명). 같은 기간 신안군은 인구가 4% 줄어드는(4만2070→4만399명) 동안 공무원은 8.1% 늘었다(718→776명). 서울·부산·대구 등 국내 3대 도시도 '인구 감소, 공무원 증가'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2년간 서울·부산·대구의 인구는 1.3~1.6% 줄었는데 공무원은 3.2~5.4% 늘었다. 조선업 경기 침체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울산은 같은 기간 인구가 1만6210명(1.4%) 줄었는데(116만5132→114만8922명), 공무원 수는 되레 6.3% 늘었다(6060→6443명).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지방공무원 신규 채용 규모는 3만3060명으로 지난 2015년(1만7561명)과 비교해 4년 만에 88%나 늘었다. 인건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15년 지방정부 인건비 총액은 62조원 정도였는데 2018년에는 70조원을 넘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강원도 A군의 경우 읍·면사무소별 인건비는 수당과 연금부담금 등을 포함해 연평균 12억원 정도였다. 크게 하는 일이 없어도 직원 1명당 연 6000만~8000만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장기적으로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공무원 증원을 무턱대고 추진할 것이 아니라 격무지로의 인력 재배치 등을 적극 활용해 공공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