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Books팀장

영화 ‘천문’을 보았습니다. 조선 4대 임금 세종과 당대 과학자 장영실 이야기입니다. 최민식(장영실)과 한석규(세종)가 뛰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9일 현재 관객 수는 175만명. 크게 흥행하진 못했네요. 최근 역사 전공 교수 둘에게 들었습니다. 역사 왜곡이라 하더군요. 세종은 자주적이고, 신하들은 사대적이었다고 묘사하는데 이런 이분법 자체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입니다. 미리 짠 프레임에 역사를 끼워 맞춘 것이란 혹평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론 매우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세종이 칼을 빼드는 장면에서 특히 소름이 돋았습니다. 세종은 태종이 입었다는 검은 곤룡포를 입고 신하에게 욕설을 퍼붓습니다. 역사 기록에 이런 대목이 없으니 왜곡이라 해도 할 말 없지요. 그러나 새삼 깨닫게 해주더군요. 세종이 태종의 아들이고, 세조의 아버지란 점입니다. 형제들과 전쟁을 벌여 권좌에 오른 태종은 안정된 왕권을 물려주고자 아들의 외삼촌 형제를 죽이고 세종의 처가를 몰락시킨 냉혹한 군주입니다. 세조도 못지않지요. 김종서에게 철퇴를 내리치고, 한배에서 난 동생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태종의 유전자를 받고 세조에게 그것을 물려준 세종이 그렇게 할 수 없었을까요.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것이지요. 세종이 원한 나라는 권력을 제멋대로 행사하는 전제 왕국이 아니라 백성들이 생업을 즐겁게 여기며 살아가는 생생지락(生生之樂, 박현모 '세종의 적솔력')의 나라였으니까요.

영화에서도 세종은 끝내 칼을 쓰지 않습니다. 권력이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세종은 조선 최고의 성군(聖君)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