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소설가

은퇴 후 전업 투자를 시작한 한 지인의 수익률이 워낙 높아서 투자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열심히 공부한다는 교과서적 답이 돌아와 실망했는데 얘기 끝에 그에게 “공부를 해보니까 그제야 내가 뭘 몰랐는지 알겠다”는 말이 나왔다. 공부를 제대로 해보기 전에는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인턴까지 7년을 공부하고 나서야, 의사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사람도 봤다. 포기에 대한 매몰 비용 때문에 주변 반대가 극심했지만, 새 도전은 그를 의료 전문 변호사로 업그레이드했다. 그로선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 역시 공부였던 것이다.

"이게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우리는 실패로 결정한다. 하지만 진짜 공부는 이 깨달음에서 온다. 믿어왔던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공부이기 때문이다. 구본권의 책 '공부의 미래'에는 500년 전, '무지의 발견'이라는 메타 인지가 인류 과학에 비약적 발전을 가져온 계기였다고 설명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연현상을 신의 섭리와 신비로 설명하는 대신,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현재 지식의 한계와 무지를 인정함으로써 근대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에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컬'(컬은 culture의 첫 음절)이라는 제목의 상이 있다. 새로운 시도였으나 아깝게 실패한 연구 사례와 나중에 실패 원인을 알게 된 사례 등을 공모해 상을 주는 것이다. 이른바 실패의 자산화다. 모름과 실패에 대한 편견을 바꿔야 한다. '공부의 미래'라는 같은 제목의 책을 쓴 존 카우치의 말은 이때 유용하다.

“잘 못하는 일은 멀리하고, 잘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자 하는 인간 심리… 이것이 우리가 무엇에서든 최고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우리는 실패를 과정 중의 한 걸음, 또는 배우는 과정의 일부로 보지 않는다.” 그의 말이 맞는다. 우리는 실패를 감수하고 배우는 게 아니라, 실패 덕분에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