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이 끝난 뒤 두산에서 방출됐을 때만 해도 홍상삼(30)의 야구 인생은 끝난 것으로 보였다. 정상적인 투수도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에 마음먹은 대로 공을 던지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공 던지는 것 자체가 두려운 공황장애를 겪은 그가 마운드에 서기 힘들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과는 달리 지난해 12월 초 KIA와 계약을 맺었다.

"방출 통보를 받은 이틀 후 두산에서 코치로 계셨던 조계현 단장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자신감만 되찾으면 위력적인 투구를 다시 할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새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어요. 외국인 감독님(맷 윌리엄스)이 나를 백지상태에서 평가해 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도 편해지더군요."

◇ "더 이상 공황장애는 없다"

홍상삼은 지난 4월 2년여 만에 선발 등판한 1군 경기에서 승리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한 개를 남기고 강판당했다. 그는 그날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타자 대신 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 우황청심환을 먹고 마운드에 섰다"며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KIA에 입단한 홍상삼이 새해 첫 날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일본과의 해전을 앞두고 ‘필사즉생(必死則生·죽기를 무릅쓰고 나서면 산다)’의 정신을 강조한 것처럼 나 역시 나와 가족을 위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말했다.

홍상삼의 투구 트라우마는 2013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1―0으로 앞선 8회 등판했으나 갑작스러운 제구 난조로 폭투 3개를 기록하며 점수를 내줬다. 두산이 플레이오프에 오른 다음 홍상삼이 등판하자 상대인 LG 팬들은 환호하고, 홈팬들이 야유를 보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홍상삼은 "폭투 이후 팬들의 야유와 악성 댓글에 시달렸고, 이후 마운드에 오르는 것조차 두려웠다"고 했다. 충암고 시절인 2008년 봉황기 고교대회 MVP, 신인이던 2009년 9승, 2012년부터 두 시즌 동안 필승계투로 맹활약했던 그였지만, 2013년 가을 폭투가 그의 야구 인생을 바꿔놨다.

홍상삼은 지난해 6월 구원투수로 두 경기를 더 뛴 뒤 1군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타자가 아닌, 자신과의 전쟁을 치렀다. 명상과 최면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매일매일 자신의 심리상태를 영상일기로 기록했다. 그랬더니 마음속 불안이 서서히 사라졌다고 했다.

"요즘도 시계 초침을 1분 동안 지켜보며 잡생각을 없애거나, 미간을 두드리면서 '괜찮아, 좋아질 거야' 하고 자기 최면을 걸죠."

홍상삼은 "마음의 병을 극복하기 위해 요즘은 일부러 댓글을 본다. KIA 이적 후 여전히 비난 댓글이 많지만, 용기를 주는 댓글에 오히려 자극받는다"고 했다. 그가 KIA행을 결심한 것도 열성 팬이 많은 팀이 주는 압박감을 극복해야 지난날 아픔을 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KIA의 '산삼'이 되겠다

홍상삼은 새해 하루하루를 의욕적으로 보내고 있다. 실내 연습장을 찾아 50개 정도 캐치볼을 한 뒤 1시간 30분 정도 어깨 근육 강화 위주의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그의 주무기는 직구와 포크볼. 아래로 뚝 떨어지는 포크볼은 원 바운드 공이 많아 폭투 위험성이 그만큼 크다. 그는 "포크볼 투수가 폭투 많은 건 인정해야 마음이 편하다"며 "지금도 직구는 150㎞ 가까이 던질 자신이 있으니 과거보다 더 힘을 앞세워 타자를 상대하고 싶다"고 했다.

"KIA챔피언스필드 마운드에서 제가 승리를 따내고 환호하는 모습을 네 살 아들 수민이가 관중석에서 바라보면서 '아빠다' 하고 외치는 소리를 꼭 듣고 싶어요. 이제 정말 가족과 팬, 나를 위해 더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홍상삼은 "KIA와 이상하게 궁합이 잘 맞을 것 같다. 이름을 '산삼(山蔘·위력적일 때 붙은 별명)'으로 바꿔볼까도 생각 중"이라며 "일단 1군에서 살아남는 게 목표지만, 내년 가을에 KIA와 팬들이 나를 보고 '심봤다'고 외치는 소리도 듣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