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 시각) 오후 7시쯤 미 워싱턴 백악관. 방송사 카메라들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이 차례로 백악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워싱턴에 큰 눈이 내려 모든 관공서가 2시간 일찍 문을 닫은 상황인데도 외교 안보팀이 급히 백악관으로 뛰어 들어온 것이다. 곧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는 소식이 보도됐다. 그러나 오후 8시가 넘으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CNN은 "오늘 밤 성명 발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 당국자들도 "현재 피해 규모를 산정 중이지만 인명 피해 보고는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9시 45분쯤 트위터에 "사상자와 피해에 대한 평가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는 매우 좋다"고 했다. CNN은 "인명 피해가 없다는 점에서 백악관이 한숨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란이 8일 미국의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폭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의 공군 기지 두 곳에 탄도미사일 공격을 했다. 사진은 이란 국영 방송사가 이날 이란에서 쏜 미사일의 모습이라며 공개한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실제 이번 미사일 공격을 촬영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의 한 관리는 LA타임스에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해 "요격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군이 이미 이란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었고, 발사와 동시에 장병들을 대피시킬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란은 이번 작전을 솔레이마니의 이름을 따서 '샤히드(순교자) 솔레이마니'라고 이름 붙였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우리는 미국의 뺨 한대 때려줬지만 충분치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란의 이날 공격은 '보복'이란 명분을 쌓으면서도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미군 기지를 공격한 시간은 이라크 현지 시각 8일 오전 1시 30분으로 미국이 지난 3일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했던 시각이다. 특히 이란은 이번 군사작전을 하면서 키암-1과 파테-110 등 새로운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 종류를 발사했다고 이례적으로 미사일 종류까지 상세히 공개했다. CNN의 테헤란 특파원은 생방송에서 이를 언급하며 "다분히 보여주기용 공격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란 국영TV는 이날 "미국 테러범 80명이 테헤란의 포격 속에 죽었다"고 보도했지만, 이 역시 이란 국내 선전용일 가능성이 있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이 응전하지 않는 이상 이란은 이번 공격으로 끝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는 "이번 공격은 일종의 퍼포먼스"라며 "정말 미국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미국에 힘을 표면적으로 보여주면서 이란 내 여론을 더 신경 쓴 공격"이라고 했다.

그러나 확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올해 대선을 앞둔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지층을 의식해서라도 이란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트위터에 이란이 공격하면 "(몇 배로 갚아주며) 불균형적으로 반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공격의 피해가 적더라도 일단 미군을 향해 미사일을 날린 만큼 어떤 식으로든 군사적 대응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공격 수위에 따라 전면전 양상으로 비화할 수 있다.

이란군도 "우리의 강력한 보복은 이번만 아니라 계속될 것"이라며 "미국의 보복이 있을 경우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 대한 보복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직접 공격은 아니라도 이라크 내 친(親)이란 민병대 등을 동원해 미군을 괴롭히는 대리전은 언제든 가능하다. 알렉스 바탄카 미 중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CNBC방송에서 "상황이 통제 불능이 될 위험이 있다"며 "테헤란은 자신들도 트럼프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이번 공격으로) 알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