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란 말은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니다. 겨울이 춥고 눈이 많이 와야 보리농사가 잘된다. 눈은 보리에게 이불이다. 한겨울 보리가 얼어 죽지 않게 해주고 봄이 되면 녹아서 가뭄을 해갈해 준다. 겨울이 따뜻하면 보리가 웃자라 꽃샘추위에 얼어 죽기 십상이다. 옛말에 ‘겨울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고 했다. 마늘과 양파가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야 알이 굵어지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도 올해 동치미는 김치냉장고에서 익힌다고 한다. 11월 중순쯤 동치미를 담가 한 달쯤 지나야 먹기 좋게 익는데 올해는 금방 다 익었다. 겨울밤 동치미 국물에 국수라도 말아 먹으려면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는 수밖에 없단다. 농촌에선 본격 한파가 오기 전 어린나무들을 짚으로 감아두는데, 나무가 얼어 죽지 않게 하면서 해충을 짚 속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봄이 오면 그 짚을 벗겨 태워 벌레를 일망타진한다. 그런데 올겨울엔 벌레들이 밭에서 발발 기어다닌다고 한다.

▶엊그제가 소한이었는데 온종일 비가 왔다.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낯설고 비린 냄새가 나기에 뭘까 생각해보니 빗물 젖은 우산 곰팡이 냄새였다. 장마철에나 맡던 냄새를 한겨울에 맡으니 코끝 신경이 더 예민해진 모양이었다. 겨울비 때문에 얼음장 낚시하는 축제가 연기되고 농경지 비탈이 무너지는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인에게 겨울비는 영 상서롭지 못하다. 조동진은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했고 임현정은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라고 노래했다.

▶낮 기온이 23도 넘게 오른 제주에서는 유채꽃과 철쭉이 만발했고 관광객들이 반팔 차림으로 돌아다닌다고 한다. 겨울 속담에 '초순 홑바지가 하순 솜바지 된다'고 했는데 이러다가 홑바지가 바로 반바지 될 모양이다. 3년 전 겨울도 너무 따뜻해서 이상할 정도였고 재작년엔 12월 중순 한강이 얼어붙을 만큼 추웠다. 작년엔 1월 서울 강수량이 0㎜ 적설량 0㎝로, 너무 건조해 걱정을 키웠다. 매년 이렇게 겨울 날씨가 다르니 이제 '한국의 겨울'을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겨울이 너무 춥고 눈도 너무 많으면 그 또한 해를 입히니 누그러운 날씨가 꼭 나쁠 건 없다. 그러나 코가 맵도록 춥지 않으면 서툰 연인들은 무슨 핑계로 팔짱을 낄 것이며, 눈이 안 오면 시인은 어떻게 원고지를 메워 겨울을 날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는 오로지 봄을 기다리며 매서운 겨울을 버텨온 민족이다. 겨울이 어영부영하니 봄도 흐지부지할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