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총선의 해를 맞아 여론조사를 실시한 언론들은 일제히 "야당 심판론으로 민심이 기울어져 있다"고 보도했다. KBS, MBC, 한겨레신문 등 조사에서 야당 심판론에 대한 공감이 50%를 넘었고 정부·여당 심판론은 30%대에 머물렀다. 정권 중간에 치르는 선거를 앞두고 전례 없이 야당 심판론이 집중적으로 조명받고 있다.

야당은 여론조사를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KBS 여론조사 표본에는 지난 총선에서의 여권(與圈) 투표층이 지나치게 많았다. '2016년 총선 지역구에서 어느 당 후보에게 투표를 했는가'란 질문에 민주당(49%), 새누리당(22%), 정의당(4%), 국민의당(3%) 순이었고 '투표하지 않았다'와 '모름·무응답'은 19%였다. 중앙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당시 각 당의 지역구 후보 전체 득표율은 새누리당(22%), 민주당(21%), 국민의당(9%), 정의당(1%) 순이었고 투표 불참자가 42%였다. 여론조사 표본에 민주당과 정의당 등 여권을 찍은 응답자가 22%만 포함돼야 하는데, KBS 조사에서는 30%포인트나 많은 52%를 차지했다. 표본에 여권 지지층이 실제보다 너무 많아서 조사 결과가 민심과 크게 다르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반면 과거 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냐고 물으면 승리한 쪽으로 쏠리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이 질문 결과를 표본 왜곡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여권 지지로 돌아선 사람들이 지난 선거에서 다른 당을 찍거나 투표를 안 했다고 밝히기 꺼리는 것일 뿐이란 견해다. KBS는 이 조사에 앞서 '믿거나 말거나 식이 아닌 신뢰도 100점 여론조사'라고 홍보까지 했다. 하지만 신뢰도 만점 조사가 되려면 여권 쪽으로 기울어진 표본 구성에 대해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여론조사에선 앞으로도 여기저기서 야당 심판론이 우세하다는 결과가 계속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럴수록 여당은 자신감을 갖고 야당을 몰아붙일 것이다. 여러 갈래로 찢어진 야권 분열로 힘겨운 선거가 예상되는 야당으로선 '심판론' 프레임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숙제까지 추가됐다. 야당은 여론조사만 탓할 수는 없다. 필패(必敗)로 이어질 수 있는 정당 구도와 프레임은 야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민생과 일자리, 부동산 등 국가 주요 정책의 실패로 국민의 불만이 치솟고 있지만, 정부·여당을 향한 '경제 무능 심판론'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응집력과 전략 부족으로 야당이 공격다운 공격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야당은 국정 운영 책임자도 아니면서 오히려 "심판받아야 한다"는 역공에 시달리고 있다. "선거에는 KO승이 없고 판정승만 있을 뿐"이란 말이 있지만, 요즘 같아선 KO로 승부가 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