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노포(老鋪) 보존' 논란이 불거지며 재개발 사업이 전면 중지됐던 서울 중구 세운지구의 을지면옥 건물이 결국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오는 3월 철거 절차에 들어갈 전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초 "노포를 보존할 대안을 연내에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해가 바뀌도록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토지주들이 강제 매입에 들어가 법원의 매입가 결정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을지면옥이 포함된 세운3구역의 토지주연합 관계자는 7일 "3~4월쯤 법원의 강제 매입을 승인받아 철거 준비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지주연합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토지주 40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지난해 서울시가 을지면옥 등 보존을 이유로 재정비 사업을 돌연 중단하자 "14년째 진행하던 재개발 사업을 무슨 근거로 중지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35년 된 을지면옥 하나를 보존하는 것이 열악한 환경 개선과 맞바꿀 만큼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재개발을 중단시킨 박 시장은 내놓겠다던 '대안'을 수개월이 지나도록 제시하지 못했다. 기다리다 못한 토지주 측에서 지난해 9월 법원 결정을 통한 강제 매입 절차에 들어갔다. 토지주연합 관계자는 "법원에서 매입가가 확정되는 대로 세입자들에 대한 영업 보상안을 협의하고 철거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와 토지주연합 등에 따르면 을지면옥 매입은 사실상 확정됐다. 현행법상 공공 사업을 위해 필요한 토지와 건물은 소유자에게서 강제 수용할 수 있다. 법원에서도 강제 매입을 전제로 을지면옥 매입 가격을 결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적 대책을 내놓지 못한 시는 "가능한한 협의를 통해 철거할 수 있도록 유도해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을지면옥과 토지주 측 사이에 갈등이 깊어 협의가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을지면옥 토지주인 이윤상 을지면옥 전 사장도 7일 본지 통화에서 "협의 매입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철거하더라도 을지면옥이 있던 자리라는 흔적은 남겨달라고 토지주연합 측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재정비 사업 시행사가 을지면옥 측에 지급해야 할 금액은 이르면 3월 중 결정된다. 해당 구역 공시지가의 110~120%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을지면옥 측은 강제 수용 절차에 이의를 신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의 신청을 해도 강제 매입은 막을 수 없으며, 매입가나 매입 시기 조정만 가능하다.

을지면옥이 매입되더라도 재정비 사업이 실제로 진척될 때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노포 보존뿐만 아니라 세입자 대책 마련도 사업 재개 조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시는 현재 비어 있는 청계호텔에 세입자들을 이전시키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그러나 호텔 리모델링 비용을 토지주들이 부담하도록 요구해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토지주 측은 "서울시가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면 재개발 절차가 더욱 늦어지면서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 관계자는 "양측 합의를 끌어내도록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