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연연구소 지원으로 5년 전 국제 저명 학술지에 실린 공학 분야 논문에 서울의 한 중학생이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이 논문의 교신 저자(논문 저술 과정을 총괄하는 저자)인 미국 대학 A교수는 "지인의 딸"이라고 연구소에 해명했지만, 중학생 공동 저자의 구체적인 역할을 밝히지 않았다. A교수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문제가 된 논문에는 고등학생인 자신의 아들도 공동 저자로 돼 있다.

입시 비리 의혹으로 이어진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의 의학 논문 제1저자 등재와 마찬가지로, 교수가 본인 자녀나 지인의 자녀 등에게 저자 지위를 선물해주는 '선물 저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연구비를 댄 정부 출연 연구소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저자 자격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 연구소 25곳에서 수행한 연구 논문의 미성년 저자 포함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이런 사례를 포함해 미성년자가 공동 저자나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이 100여 편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상반기 안으로 연구 윤리 위반 여부와 대학 입시 악용 가능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소속이 '서울 K중학교'인 공동 저자

7일 본지 취재 결과, 정부 출연연구소인 재료연구소와 생산기술연구원의 지원으로 2015년 5월 국제 학술지 '일렉트로키미카 악타'에 실린 한 논문에 이모양과 A교수의 아들이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학술지는 세계 학자들 사이에서 자주 인용되고 심사가 까다로운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등재 학술지이다. 전기·화학 분야 세계 5위권에 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루미늄을 쌀 모양처럼 끝이 뾰족한 타원 형태의 입자로 합성하는 방법을 실험으로 규명한 이 논문의 저자는 A교수 등 모두 9명이다. 재료연구소와 생산기술연구원 등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과 함께, 이양과 A교수 아들 A군 이름이 올라 있다. 논문에는 이양 소속이 서울 서초구 K중학교, A군 소속은 미 캘리포니아주 N고등학교로 각각 표기돼 있다.

재료연구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요청에 따라 지난달 이양과 A군의 저자 자격을 판단하는 연구윤리위원회 차원의 예비조사를 벌였다. A교수에게 A군이 자신의 아들이며 이양은 "지인의 딸"이라는 설명을 듣는 데 그쳤고, 이양이나 A군의 구체적인 역할과 실제 참여 기간은 조사하지 않았다. 재료연구소 일각에서 "현재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이 됐을 이양이 논문 실적을 고등학교나 대학교 등 상급 학교 진학에 활용했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묵살됐다. 생산기술연구소도 예비조사 결과 "미국인 교수가 교신 저자인 논문을 조사할 이유가 없다"며 본조사위원회를 꾸리지 않았다.

◇출연 연구소 미성년 저자 논문 100여 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 상반기 안으로 산하 출연 연구소 25곳에 대해 미성년자가 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의 저자 자격을 제대로 검증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10~ 12월 조사한 결과, 이양 같은 미성년자가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 연구소 지원을 받은 논문 에 이름을 올린 경우는 2007~ 2018년 동안 100여 건이다. 이 가운데 최소 15건의 경우 교신 저자나 제1저자 등 논문 주요 저자가 미성년 저자의 부모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미성년자가 제대로 된 저자 자격을 갖췄는지, 정부 출연 연구소들이 적절한 검증 절차를 거쳤는지 조사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