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송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저자

어릴 때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에 출석 스티커를 한꺼번에 붙여서 가져갔다. 그때 나는 새로운 달이 시작된 지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30일치를 꽉 채워 가면 부정 출석(!)을 들킨다는 생각도 못 할 만큼 어렸다. 선생님은 내 출석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없이 나를 안쪽으로 데려갔다. 그러고 새 출석 카드를 만들어서 그날까지 받은 스티커만 붙여 내게 주었다. 어떻게 알았지? 나는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며 손등을 자로 때리던 선생님이 아니라 온화한 선생님에게 들킨 것을 다행스러워하면서 학원을 빠져나왔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다. 훈육과 교정은 분명 필요하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자기 잘못을 인정할 때, 사과하는 법을 배울 때 세계는 조금씩 넓어지고 관계는 연결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훈육을 어른 기준의 가혹함으로 해석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고운 놈 매 하나 더 준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처럼 교육이 신체적·정서적 폭력을 동반해야 한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느라 종종 작은 인간에게도 연약한 마음과 수치심, 자기 존엄이 있다는 것을 잊는다.

가끔 생각한다. 2000원, 3000원짜리 장난감이 갖고 싶어서 스티커를 주렁주렁 붙여 온 아이를 앞에 두고 고민했을 선생님 마음을. 들킨 줄도 모르고 초롱초롱 올려다보던 나에게 돌아온 올바른 출석 카드는 모두가 보는 가운데 때리거나 윽박지른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효과를 발휘했다.

어린이 마음에는 매일매일 작은 씨앗이 뿌려진다. 그중 어떤 것은 오래 살아남아 언제든 가지를 흔든다. 어린이를 대할 때 내 마음은 자주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단호해야 할 때와 다정해도 되는 때를 구별하고, 세상에 불시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모든 것이 서툴 수밖에 없는 이에게 관대해지고 싶다. 따뜻한 씨앗을 되도록 많이 뿌려주고 싶다. 어른은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