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중동 화약고에 불이 붙으면서 세계 정세와 경제가 출렁이고 있다. 이란은 어제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수량 제한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면서 2015년 체결된 핵합의 탈퇴를 천명했다. 핵무기 생산에 본격 들어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군부 핵심 실세를 제거한 이후 이란과 미국이 '가혹한 복수' '이란 내 52곳 주요 목표물 공격' 같은 험한 말을 주고받는 등 양국 대립이 일촉즉발로 치닫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 전운이 고조되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안전과 경제가 받는 영향은 막대하다. 영국·독일·프랑스 등 서방은 물론 러시아도 중동 긴장 완화를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미 동맹을 안보의 축으로 삼고 있고 경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중동 위기는 결코 강 건너 불일 수 없다. 당장 중동 지역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해 만반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라크에 1600여명, 이란에 290여명, 이스라엘에 700여명이 있다. 이란 군사력은 미국과 상대가 안 되기 때문에 이란 또는 친(親)이란 무장 단체들이 미국을 직접 공격하기보다 '미국의 친구들'을 타깃으로 삼을 우려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테러 위협이 높아지고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는 위축되고 교역 물동량도 줄어든다. 금융시장과 국제 유가 불안으로 국내 산업계가 도미노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원유 가격은 이미 출렁이고 있다. 이란이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국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적극 검토해온 정부는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호르무즈는 한국으로 향하는 원유의 70~80%가 통과하는 길목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임승차만 바랄 수는 없지만, 동시에 이란의 거센 반발도 고려해야 한다. 한·미 동맹과 이란과의 외교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관심이 중동으로 쏠리는 틈을 타 북한 김정은이 현실을 오판해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청와대는 어제 예정에 없던 NSC를 소집했고, 경제 부처들도 긴급 장관회의를 열었다. 중동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 오로지 대한민국의 안보·국익을 기준으로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 지난해 정부는 국가가 아닌 정권의 유불리만 앞세우다 외교 안보적 실패를 거듭했다. 이번 중동 사태는 그런 오판을 허용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긴박하다. 야당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선거를 잊고 나라 걱정하는 마음으로 협력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