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음력으로 12월을 납월(臘月)이라고 한다. 양력으로는 12월 말에서 1월 초 무렵 피기 시작하는 매화가 바로 납월홍매인데, 이 매화가 전남 순천시 낙안면에서 핀다는 소식을 듣고 연초에 낙안을 유람하였다.

아직 힘이 남았을 때 강호 유람이나 실컷 하다가 죽어야지 저승에 가서도 할 말이 있지 않겠는가! 낙안에 가기 전에 먼저 벌교읍에 들러 꼬막 정식을 먹는 게 순서이다. 이때가 벌교에 참꼬막이 나오는 꼬막 철이기 때문이다. 참꼬막은 조개류 중에서 제일 좋아한다. 원래 벌교 꼬막은 여자만(汝自灣·보성, 순천, 여수, 고흥으로 둘러싸여 있는 내해)의 '장도(獐島)'라는 섬 근처에서 잡히는 꼬막을 가리켰지만 지금은 그 범위가 주변 뻘밭까지 확대되었다.

여자만에서 벌교천(川)이라는 냇물을 타고 8㎞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벌교읍의 홍교다리가 나타난다. 홍교다리 근처가 벌교의 중심지였으므로 꼬막 맛집도 대부분 이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초기에 왜구들이 배를 타고 여자만까지 들어와 다시 벌교천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 홍교다리 근처에서 약탈을 많이 하였다. 왜구는 100~200명 선으로 추산된다. 약탈을 피하기 위해서 홍교 근처에 있었던 쌀 창고와 같은 주요 시설을 여기에서 20리나 떨어진 낙안읍성으로 옮겼다.

왜구를 피해서 낙안읍성을 새로 축조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밀물일 때 왜구들이 벌교천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썰물일 때 배를 타고 얼른 떠나야 한다. 밀물과 썰물 사이 머무는 시간이 4시간이었고, 이 4시간 내에 약탈을 끝내야 한다. 4시간 사이에 홍교에서 20리 떨어진 낙안읍성까지 병장기를 지니고 가야 하고, 다시 약탈 물품과 부녀자를 데리고 빠져나가기는 시간상 불가능하였다.

낙안의 고지도를 보면 그 형세가 모란꽃처럼 꽃잎에 겹겹이 싸여 있는 형국이다. 그 꽃심 자리에 낙안읍성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낙안성 근처의 조씨 면장 집에는 600년 수령의 납월홍매가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 그 수명이 다하기 전에 지허 스님이 그 매화 씨를 받아서 금전산(金錢山) 금둔사(金芚寺) 경내에다 살려 놓았다. 금전산은 낙안의 주산인데, 이름이 특이해서 돈이 궁해지면 이 산에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금둔사 경내에는 붉은 납월홍매가 몇 송이 피어 있다. 필자를 안내해준 박인규(63)는 직장 퇴직 후에 고향인 낙안에 돌아와 인생 이모작으로 ‘납월홍매’라는 술을 빚는다. 납월홍매주를 한잔하고 홍매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