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선 때 고교생이었다. ‘1노 3김’의 첫 직선제 대선으로 고교까지 술렁거렸다. 삼삼오오 모이면 선거 얘기였다. 종종 모의 투표도 했다. 투표권 없는 고교생 처지에서 그해 겨울 선거를 부러움 섞인 감정으로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올 4월 총선부터 만 18세 고3도 투표권을 갖게 됐다. '연동 비례제'가 강제 도입되는 난리통에 '연령 하향'도 포함됐다. 여권은 "세계적 흐름"이라고 했다. OECD 국가 중 '19세 선거권'은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취학 연령이 빠르거나 학제가 달라 18세가 되면 '교복을 벗는다'는 점은 말하지 않았다. 4년 전 18세로 선거 연령을 낮춘 일본은 입학 시기가 빨라 대부분 17세에 고교를 졸업한다. 미국도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고교생이 투표하는 곳은 많지 않다. 그간 선거 연령 하향을 놓고 여론조사를 하면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반대가 좀 많았다. 연령을 낮추는 데 동의하면서도 '교실과 선거는 분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작지 않았던 것이다.

▶그제 한국교총이 성명을 내고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선거운동에 구체적인 지침을 빨리 마련하라"고 했다. 교실 내 선거운동과 정치 활동을 못 하도록 법도 손봐달라고 했다. 현행 선거법상 '후보자가 선거운동 할 수 없는 장소'에 학교는 들어가지 않는다. 교실 방문도 명시적으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후보들이 교실을 찾아 명함 돌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의원님이 고교 졸업식 때 한 말씀 할 수 있게 순서에 꼭 넣어달라"는 민원도 생길 것이다. 정치 지망생은 일단 학교운영위원회에 들어가고 볼 일이다. 고3은 이제 선거운동원도 될 수 있다. 자칫 고교생 선거 사범이 나올지도 모른다. 일부 편향된 교사가 '교육'을 핑계로 '편향된 선거운동'을 할 수도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너 일베냐?" 묻는 게 한국 교실이다. 서울 인헌고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조국 사태를 '가짜 뉴스'라고 가르친 교사도 있었다. 고교생들이 정치 선전전에 대거 휩쓸리는 일이 벌어질까 두렵다.

▶그런데 교육부는 “선거는 우리 소관 사항이 아니다”라고 한다. 일본은 71년 만에 선거 연령을 내리며 여러 해에 걸친 논의와 여야 합의가 있었다. 독일은 1976년 좌우 교육학자들이 오랫동안 머리를 맞대 ‘보이텔스바흐 협약’이란 수업 지침을 만들었다. 우리는 아무 준비 없이, 사회적 합의도 없이 나이만 낮췄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