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주말뉴스부장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눈빛 또랑또랑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세 살이나 됐을까요. 엄마 아빠와 함께였는데, 기습을 하더군요. "아저씨 몇 층에서 탔, 어, 여?" "어?… 5층." 0.5초 만에 또 묻습니다. "아저씨는 몇 살?" 이번에는 반항하고 싶어지더군요. "그런데, 아저씨 너무 무섭다, 얘." 해맑은 표정으로 다시 묻습니다. "뭐가 무, 서, 워, 여?" 이제는 부모가 민망해하더군요. 귀여운 소녀에게 반격했습니다. "공주님은 몇 살이에요?" "네 살, 세 살 아니고. 새해잖아여."

덕분에 2020년의 시작이 즐거웠습니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의례가 있을 겁니다. 크리스마스에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는 것도 제 의례 중 하나죠. 새해에도 있습니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생명의 도약을, 그 생생함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였을까요.

엄마를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아빠와 둘이 사는 소년은 늘 자신의 기원이 궁금합니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아버지를 조르죠. "아빠,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

부모의 청년 시절을 소환합니다. 젊은 청년인 아빠는 친구들과 바닷가에 놀러 가서 아직 아가씨인 엄마와 그 친구들을 만납니다. 여름,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달빛, 그리고 느닷없는 두드러기 때문에 말을 트게 된 남녀. 두근거리는 순간이 이어지고 젊은 남녀에게는 장난이 필요합니다. 친구들은 아버지를 모래사장에 묻기로 했고, 아버지는 버둥대다 포기하죠. 아버지 몸에 모래가 쌓입니다. 원래 몸보다 부풀어버린 아버지의 모래 몸통. 이제 본격적인 장난이 시작됩니다. 납작한 가슴 위로 봉긋한 두 기둥이 솟고, 아랫도리에는 거대한 모래 기둥이 솟죠. 그리고 누군가 불꽃놀이 막대를 거기에 꽂습니다. 불을 붙이고, 하나, 둘, 셋. 조급하게 타 들어가던 불꽃이 피유우웅 하고 하늘 높이 날아오릅니다. 거기서 나온 불꽃이 민들레씨처럼 밤하늘로 퍼져 나갔을 때, 반짝이는 씨앗들이 고독한 우주로 멀리멀리 방사되었을 때, 아버지는 말합니다. "바로 그때 네가 태어난 거다."

올해의 첫 호는 '아무튼, 주말'이 생각하는 2020년의 도약과 미래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이 질문을 가장 열정적으로 대답하는 주체 중 하나는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의 불꽃놀이를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