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미 국가정보국(DNI) 산하의 분석기관인 국가정보위원회(NIC)는 5개 대륙 전문가 수백 명을 불러 모았다. 목표는 2020년의 세계를 예측하는 것. 이들의 연구 결과는 그해 12월 '세계의 미래를 그리다(글로벌 트렌드 2020)'란 제목의 119쪽 보고서로 발간됐다. NIC는 정보를 종합해 예측하고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의 시사지 디 애틀랜틱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이 보고서가 2020년 현재 일어나는 북핵 문제, 미·중 패권 경쟁, 미국 우선주의 발호 등 상당 부분을 맞혔다며 "오늘날 세계가 예측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 점을 암시한다"고 평가했다.

북핵과 관련한 보고서의 예측은 거의 그대로 이뤄졌다. 당시는 북한이 1차 핵실험(2006년 10월)도 하기 전이었지만, 보고서는 "북한과 관련한 위기가 향후 15년 동안 언젠가는 고개를 들 것"이라며 "북한이 2020년 이전까지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핵 탑재 미사일을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이 예측은 북한의 여섯 차례 핵실험과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보고서는 또 미·중 패권 경쟁의 격화를 예상했다. 2004년만 해도 미국의 국내총생산(12조달러)은 중국(2조달러)의 6배에 달해 격차가 컸다. 그러나 보고서는 "중국의 민족주의가 고조되고, 전략적 경쟁자로서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공포감이 (두 나라의) 적대적 관계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아시아에서 새로운 '안보 질서'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과 새로운 대중 압박 정책인 '인도·태평양 정책'으로 현실화했다.

'미국 우선주의' 등장도 정확히 예측했다. 보고서는 가상의 여성 유엔 사무총장의 2020년 9월 일기장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많은 미국인이 세계 경찰의 역할에 싫증을 느끼고 있다"며 "(미국인들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 주도의 세계 평화)는 동맹에 대한 (비용) 부담 때문에 썩은 거래라고 확신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UN을 뉴욕에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미국 우선주의자(America Firster)들이 (UN을 뉴욕에서) 나가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 기조 및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비 증대 요구와 정확히 일치한다. 보고서는 이슬람국가(IS)와 같은 새로운 '칼리프 국가(이슬람의 정치·종교 지도자인 칼리프가 통치하는 국가)'의 등장도 부분적으로 맞혔다.

물론 틀린 예측도 있다. 보고서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설립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쇠퇴를 예상했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등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2004년에 16년 후 미래의 세계정세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한 NIC는 2008년과 2012년에 각각 '2025년'과 '2030년'을 예상한 보고서도 내놓았다. NIC는 2025년 즈음해 2차 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구축된 세계 질서가 중국과 인도 등의 부상으로 거의 와해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다극 체제 등장은 역사적으로 패권국 한두 곳이 있었던 때에 비해 더 혼란스러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가 19세기처럼 군사와 영토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미 국방부가 2018년 '국방전략' 보고서에서 "미국 안보의 초점은 열강과의 경쟁"이라고 했던 것과 일치한다.

NIC는 2030년에는 아시아가 인구뿐 아니라 경제력과 군사력 등에서 북미와 유럽을 합친 것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중국, 인도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부상하면서 세계에 패권국이란 존재는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NIC는 한반도와 관련, 2025년쯤에 남북통일이 되거나 남북이 이에 근접한 상황일 수 있다고 예측했지만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또 북핵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