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일본의 권위 있는 신인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는 예순네 살 주부 와카타케 지사코였다. 한 해 전 발표한 데뷔작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로 ‘문예상’ 최고령 수상자가 된 뒤의 겹경사였다. 어려서부터 소설가를 꿈꿨으나 “시골에서 태어났고 교사 시험에 떨어졌으며 드라마 작가도 되지 못했고 스물여덟에 결혼해 줄곧 주부로 살았다.” 남편이 뇌경색으로 먼저 세상을 뜬 뒤 쉰다섯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이 죽고 나서 아주 약간 기뻤다”고 고백했다.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는 환갑 넘어 주목받는 작가가 많다. 이미 6년 전 75세의 구로다 나쓰코가 아쿠타가와상 최고령 수상자 기록을 세웠다. 74세에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은 후지사키 가즈오는 65세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엔 99세 할머니 시바타 도요의 첫 시집 '약해지지 마'가 150만부나 팔렸다.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뜻하는 '아라한(around hundred) 책'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선 불혹에 데뷔한 소설가 박완서가 오랫동안 늦깎이 신인의 대명사로 불렸다. 그러나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60세 신인 박찬순이 등장하면서 '환갑 등단' 작가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박찬순은 이후 소설집 세 권을 내면서 한국소설작가상을 받고 동인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송호근 포스텍 교수, 신기남 전 국회의원도 예순 넘어 첫 소설을 내며 '문청'의 꿈을 이뤘다.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62세 김수영씨가 당선돼 14년 전 박찬순의 기록을 깼다. 심사를 맡은 작가들보다도 나이가 많아 뽑고 나서 놀랐다고 한다. 김씨는 아이들 대학 보내고 직장에서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글쓰기를 우선순위에 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신인 작가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며, 포기하지 않으면 끝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신춘문예나 신인문학상이 아니더라도 노년에 이르러 문학에서 삶의 희열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중소 도시 노인복지회관들이 이들을 발굴하는 데 앞장선다. 72세까지 문맹이었던 한충자 할머니는 “죽기 전에 이름 석 자 써보고 싶어서” 한글을 배웠고 86세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까막눈 시인’으로 불리는 그는 시를 쓰게 된 뒤로는 “밭일하다가 들국화 냄새도 맡아보고 돌멩이도 들춰본다”고 했다. 김맬 때 무심코 갈아엎던 것들이 시의 재료가 된다. 그 손에 핀 검버섯도 시를 쓸 때면 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