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1월 1일은 아들 찬이가 태어난 지 36일째다. 수시로 보채고 우는 아이를 키우느라 마흔을 넘긴 몸이 고달프지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해 11월 결혼 11년 만에 태어난 아들의 태명이 '조이(joy·기쁨)'여서인지 매 순간은 기쁨의 연속이다. 이런 기쁨 뒤에는 11년의 아픔이 있었다.

나와 아내는 2008년 결혼하면서 아이를 고대했다. 장애인 재활용 의족을 만들던 아내가 일을 그만두면서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다섯 번 유산했고 두 차례의 시험관 시술도 실패했다.

나와 아내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며 기도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시련은 또 찾아왔다. 2017년 1월 아내가 두통을 호소해 병원을 찾았는데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아내의 신장이 망가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의사는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곱게 키운 막내딸을 시집보낸 장인어른에게 이 소식을 전할 때 먹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행히 유전자 검사와 교차반응 검사를 받아본 결과, 남편인 내 신장을 아내에게 떼어줄 수 있다고 했다.

남편 강봉기(41·오른쪽)씨의 신장을 이식받은 이길선(40)씨가 지난해 11월 27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아들 찬이를 낳았다. 이씨처럼 이식 후 부작용이 없는 면역관용유도 신장이식수술을 받은 여성이 아이를 출산한 것은 국내에선 처음이고 세계적으로 세 번째다. 사진은 병원 퇴원을 앞둔 세 식구의 모습.

문제는 신장 이식이 성공해도 아내가 면역억제제를 평생 먹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남의 신장이 들어오니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인데, 면역억제제를 먹으면 고혈압이나 당뇨, 신장 기능 약화 등의 부작용이 뒤따른다고 했다. 이후 생긴 아이에게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내 신장이 아내한테 가는 것만으로도 면역 체계가 흔들리는데, 나의 신장을 받은 아내의 유전자와 나의 유전자의 결합체인 태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또 다른 교란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망연자실했다.

천우신조로 '면역 관용(慣用·tolerance) 이식'이라는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수술은 미국 이식센터 3곳과 한국의 삼성서울병원 등 전 세계에서 4곳만 가능하다고 했다.

신장을 이식하면서 내 골수까지 아내한테 이식하면 거부반응이 줄고, 따라서 면역억제제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였다. 골수가 면역세포를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내 골수와 신장을 동시에 주면, 아내가 내 신장을 관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2017년 8월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박재범 교수의 집도로 신장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신장 기증자인 나와 수혜자인 아내의 면역 체계가 일시적으로 공존하도록 내 신장뿐 아니라 골수까지 아내에게 이식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아내 신장은 제 기능을 되찾았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아내의 자연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응어리진 불안 속 11년 끝에 아이가 생긴 기쁨을 아이의 태명(조이·joy)에 그대로 담았다. 박 교수와 노정래 산부인과 교수가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도록 끝까지 세 식구를 보살폈다. 장혜련 신장내과 교수는 신장 기증자인 내 건강을 살펴줬다.

아내와 아이가 걱정돼 뜬눈으로 지새운 나날이었다. 26년 된 아파트는 주차 공간이 세 집당 한 대꼴에 불과해 이중 주차가 당연한 곳이었다. 언제든지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응급실로 달려갈 수 있도록 바로 차를 뺄 수 있는 자리에 주차해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병원까지 교통신호 대기를 줄일 수 있는 최적의 길을 찾느라 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됐다.

지난해 11월 27일 제왕절개로 3.32㎏의 건강한 사내아이가 세상 빛을 봤다. 아내는 "감사합니다"는 말을 연발하며 펑펑 울었다. 축하하러 병실을 찾은 박재범·장혜련 교수도 눈물을 글썽였다. 면역 관용 이식 수술을 받은 여성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 경우는 세계적으로 세 번째고 한국에서는 처음이라고 했다. 기쁨을 선사해준 모든 이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아이 이름은 '찬(贊)'이라고 지었다. 우리 식구의 경자년(庚子年) 새해 소망은 찬이가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