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장이 한 해를 정리하며 낸 보고서에서 소셜미디어 시대의 가짜뉴스와 '떼법(mob law)'의 위험을 지적하며 독립된 사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보고서를 낸 존 로버츠(64·사진) 대법원장은 새해 벌어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원 탄핵 심판 심리를 주재한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공개한 보고서에서 미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초대 연방대법원장을 지낸 존 제이의 사례를 들며 가짜뉴스와 폭민(暴民)정치의 위험을 경고했다.

1780년대 뉴욕 신문들은 의대생들이 시신 해부 실습을 위해 묘지를 도굴한다는 기사를 보도했고, 이는 '의대생들이 어떤 소년의 최근 숨진 어머니 시신을 병원에서 해부하려 한다'는 잘못된 소문으로 번졌다. 성난 군중은 병원 직원들이 몸을 피한 뉴욕시 감옥으로 몰려왔고, 이를 시장 등과 함께 몸으로 막던 존 제이는 한 시위자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로버츠는 "헌법의 원리에는 군중 폭력이 낄 자리가 없었다"며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여기게 됐고 시민 교육은 도중에 실패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해 즉석에서 소문과 허위 정보를 대규모로 뿌려댈 수 있는 우리 시대에는 대중이 정부가 제공하는 (법적) 보호체계를 이해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했다. 국민이 사법 원리를 잘 이해해야 가짜뉴스나 '떼법'에서 오는 각종 폐단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사법부의 독립성과 판사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마무리됐다.

로버츠는 "우리(판사)는 겸손과 진실성 등으로 각 사건에 대해 두려움이나 호의 없이 판단해야 할 의무를 되새겨야 한다"며 "새해 우리 앞에 닥친 과제들에 있어, 법에 따라 정의를 평등하게 집행한다는 우리의 엄숙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대목은 연방대법원장으로서 상원의 트럼프 탄핵 심판 심리를 주재할 로버츠가 '탄핵 심리를 정치적 편견 없이 임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무심코 읽어 봐도 시의적절한 행간을 읽어낼 수 있다"며 "트럼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보인다"고 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지난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공개 충돌한 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불법 이민자 망명 제한 행정명령 효력을 정지시킨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의 존 티거 판사를 '오바마 판사'라며 비판하자, 로버츠 대법원장은 공개 성명을 내고 "우리에겐 오바마 판사도, 트럼프 판사도, 부시 판사도, 클린턴 판사도 없다"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동등한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판사들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