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정훈 탐험대원

개브리엘 로사는 중학교 때까지 문제아였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성적도 신통치 않았고 결석도 잦았다. 지하실에서 컴퓨터 관련 책을 읽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교육비를 지원한다는 말에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한 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자마자 학내 전산 시스템을 해킹했다. 정학이나 퇴학을 예상했던 개브리엘에게 교장 선생님은 최신형 컴퓨터를 선물하며 "네 능력을 파괴적으로 낭비하지 말고 생산적인 곳에 사용해보라"고 했다. 그로부터 4년 뒤, 문제아였던 개브리엘은 IBM 개발자로 취업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최근 미국 IT(정보기술) 기업들은 구인난에 시달린다. 미국 내엔 숙련자가 한정돼 있고 해외로 눈을 돌리자니 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이 걸림돌이다. 미국 소비자기술협회에 따르면, IT 관련 일자리 50만개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등 기업들은 규모에 상관없이 IT 인재를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건다. 이런 인력 확보 전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일부 기업은 아예 방향을 틀었다. 교육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방식이 조금 특이하다. 어린 학생들에게 기초 교육부터 실무 경험까지 지원하는 일종의 도제(徒弟) 교육을 도입하는 것이다. IBM 포드 등 17기업은 '도제 연맹'을 결성해 이런 교육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개브리엘은 이런 교육의 수혜자 중 한 명이다.

◇전산 해킹한 학생에게 컴퓨터 선물하는 교장

최신 기술을 가르치는 데 가장 낡은 교육법이라니. 국내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내게는 이질적 교육 방식이다. 상대적으로 고임금 업종인 IT 분야는 도제식 수습제도가 거의 없었다.

도제 교육의 리더라 불리는 IBM이 관련 교육에 1조원가량을 투자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이들이 뉴욕시립대와 손잡고 만든 '피테크(P-TECH, Pathways in Technology Early College High School)'를 지난달 찾았다. 2011년 뉴욕 브루클린에 들어선 이 학교는 고등학교부터 전문대 교육까지 6년간 학생들을 가르친다. 학생은 기업과 학교를 오가면서 실무 교육을 받고 학위도 받는다. 학교가 펴낸 교육 책자를 보니 이런 문구가 보였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기술을 가르쳐주고 실무 경험도 쌓게 해줄 테니 지원 바랍니다. 교육비는 회사가 전액 지원하고 임금도 지급합니다.'

미국 브루클린에 있는 기술 직업교육 학교 ‘피테크’ 소속 학생이 컴퓨터 디자인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6년에 걸쳐 수학·과학 등 기본 학문과 프로그래밍 실습, 현장 방문, 유급 인턴십 기회 등을 제공한다. IBM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이른바 ‘뉴칼라’ 인재를 키우기 위해 2011년 설립했다.

피테크에 입학하면 모두 출발점이 같다. 과거 성적이나 출신 등은 고려되지 않는다. 피테크는 교사와 학생, IBM 직원 등이 멘토링을 주고받으며 학생의 학업을 돕는다. 개브리엘은 10학년 때 주위 도움으로 태양계 행성을 스마트폰에서 영상화하는 앱을 만들었다. 우리가 10학년 교실을 방문했을 때 복도의 스터디룸에선 노트북을 펴놓고 수업에서 배운 프로그래밍을 복습하는 학생이 많았다. 수업은 난도가 있었지만 집중도는 높았다. 10학년 캐럴은 "프로그래밍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IBM 직원이 직접 나와 가르쳐주고 도와줘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IBM, 고급 IT 인력 키워 고용

11학년이 되면 학생들은 유급 인턴십 기회를 갖는다. 피테크와 산학협력을 하는 기업에서 돈을 받으며 실무 경력을 쌓을 기회를 갖는 것이다. 뉴욕의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웹사이트 제작 기술을 익힌 은코시 본은 IBM 웹 개발자가 돼 인공지능 왓슨의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피테크 방문한 오바마 - 버락 오바마(뒷줄 첫째) 미국 전 대통령이 2013년 피테크를 방문해 학생들과 과제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 피테크 입학생 3분의 1은 저소득층·유색인종이다. 오바마는 “피테크는 학생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하게 돕는 티켓”이라고 했다.

피테크를 가능케 한 것은 IBM의 '뉴칼라(New Collar) 전략'이다. 뉴칼라는 단순 노무직인 기존의 '블루칼라', 사무직인 '화이트칼라'를 뛰어넘는 고급 기술 인력을 뜻한다. 그레이스 서 IBM 대외협력 총괄 부사장은 "피테크는 단순 학위보다도 새 기술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근육'을 조기에 단련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했다. 올해까지 피테크를 졸업한 학생은 180여 명, 그중 40여 명이 IBM에 정직원으로 입사했다. 피테크는 미국을 넘어 캐나다, 프랑스, 모로코 등 전 세계 24국에 120여 학교로 확장됐다. 국내에서도 지난 3월 '서울 뉴칼라 스쿨'이 문을 열었다. IBM은 매해 400명 이상의 뉴칼라 인재를 배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교육비가 전액 지원되고 과거 학교 성적을 보지 않는 특성 때문에 저소득층 학생이 많이 입학하는 것도 피테크만의 특징이다. 입학생 3분의 1은 저소득층, 장애학생, 유색인종 등이다. 2013년 피테크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피테크는 학생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게 돕는 티켓"이라고 했다.

학교 내부 곳곳엔 졸업생들의 사진과 졸업 이후 진로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라시드 교장에게 개브리엘에게 처벌 대신 노트북을 선물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학생 모두가 피테크 역사이자 미국 IT계를 이끌 역군이란 생각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피테크(P-TECH : Pathways in Technology Early College High School)

2011년 IBM이 뉴욕시립대 등과 손잡고 뉴욕 브루클린에 고교 4년, 전문대 2년 통합 과정을 연계해 만든 직업 교육 학교. 학생은 기업과 학교를 오가면서 실무 교육을 받고 학위도 받는다.

뉴칼라(New Collar)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IT 분야 관련 기술을 지닌 직업군. 화이트칼라와 달리 학력의 중요성이 낮고 직업 훈련 등 새로운 형태의 교육 과정을 통해 기술을 익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