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사진기자 김영희는 소말리아 내전, 르완다 학살, 걸프전을 현장 취재했다. 생명의 위기를 여러 번 겪었다. 기자가 현장을 찍고 필름을 가지고 나올 때 세상은 비로소 사실과 진실을 알게 된다. 그것이 그에게 언론의 의무였고 자부심이었다.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범람하는 거짓 정보가 사진·영상의 영역까지 파고들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 때 민주주의를 퍼 나르는 소셜미디어를 우리는 미친 듯 찬양했다. 그 거룩했던 소셜미디어가 갑자기 민주주의를 박살 내고 있다."

마틴 배런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은 이 현상을 "거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거짓은 얼굴을 가린 비겁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통령, 정치인, 정부가 퍼뜨린다. 배런 국장은 "거짓을 전파하는 세력은 언론을 하찮고 부당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애틀랜틱카운슬 DFR 랩 그레이엄 브루키 센터장

"언론으로부터 진실과 사실의 결정자 역할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의 목적지가 "정부가 진실을 지어내고 믿으라고 요구하는 권위주의"라고 말했다.

'애틀랜틱카운슬 DFR 랩' 그레이엄 브루키 센터장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제대로 된 정보 위에 존재"한다. DFR 랩은 러시아가 거짓 정보를 퍼뜨려 미 대선에 개입한 사실을 밝혀낸 미국의 싱크탱크다.

스탠퍼드대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는 "객관적 사실이 사라진 자리엔 극단적 양극화가 들어서고 민주주의는 무력해진다"고 말했다. 거짓이 저널리즘의 기반을 흔들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현상은 세계적이다. 미국에서 인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동유럽 몰도바까지.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는 "진실과 사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에 다시 희망을 건다"고 말했다. 월터 로빈슨 보스턴글로브 선임기자는 "제대로 된 정보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는 제대로 된 저널리즘에 의해 가능하다"고 했다.

MIT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 다니엘라 루스 소장

배런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진실과 사실은 거대한 비용, 시간,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팩트(사실)는 존재한다. 그렇다. 나는 팩트를 믿는다." 그렇게 찾아낸 팩트는 모래 위에 구축된 모든 거짓을 무너뜨린다.

세계 인공지능(AI) 연구의 구심점인 미 MIT 컴퓨터과학·AI연구소는 핵심 연구 과제로 '거짓'을 택했다. 다니엘라 루스 소장은 "거짓 정보는 사람을 실제로 해치는 위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이 발견한 거짓의 확산 방식은 암세포 번식 메커니즘과 비슷했다.

인도네시아 NGO인 마핀도의 아리보 사스미토 창립자

저널리즘이 역할을 못 하는 인도네시아에선 재난 발생 때마다 '쓰나미가 온다'는 거짓이 더 큰 재난을 일으킨다. '거짓 인도네시아는 그만' 캠페인을 주도하는 NGO '마핀도' 아리보 사스미토 창립자는 "가짜 뉴스는 두려움과 분노를 파고든다"고 말했다.

2020년 3월 5일 창간 100주년을 맞는 본지는 미국·영국·인도네시아·싱가포르에서 거짓에 맞서 싸우는 '진실의 수호자' 33명을 만났다. 저널리즘을 넘어 민주주의의 본질과 지구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널리즘의 도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와의 전쟁

가짜가 진짜보다 6배 빨리 퍼진다… 인류 파괴하는 '거짓 정보'

시난 아랄 미 MIT 경영대학원 교수는 가짜 뉴스의 전파 속도를 실증 분석했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때 트위터에서 많은 가짜 뉴스가 오가는 데 놀라 시작한 연구였다. 트윗 450만여 건을 분석해 보니 가짜 뉴스가 퍼져 나가는 속도가 진짜 뉴스보다 약 6배 빨랐다.

아랄 교수는 '참신함의 가설'을 이유로 들었다. "인간의 주의력은 새로운 것에 끌린다. 가짜 뉴스는 상당수 새롭다고 느껴진다. 가짜 뉴스의 새로움은 대부분 놀라움과 분노로 이어진다. 새 정보를 알리면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사회적 우위를 획득한다. 그래서 자꾸 공유한다.”

가짜 뉴스의 전파가 빠르다는 것은 놀라움과 분노가 그만큼 확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짜 뉴스의 확산은 분노의 확산이다. 반면 진실을 접했을 때는 기대감, 기쁨, 신뢰의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가짜 뉴스의 파급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는 2016년 미 대선이다.  ▶기사 더보기

"기자는 진실의 목격자, 우릴 믿어야할 이유를 독자에게 증명하라"

영화 '스포트라이트' 실제인물 마틴 배런 WP 편집국장 인터뷰

마틴 배런 미국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은 언론을 "목격자(eyewitness)"라고 했다. " 목격자가 되기 위해 이라크로 가고, 시리아로 가고, 자연재해 가운데로 들어간다. 어떤 저널리스트도 거짓과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다." 진실과 사실을 추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믿는 언론의 본질이다.

언론은 왜 그래야 할까. 배런 국장은 언론의 본질이 ‘특별한 의무’에서 나온다고 했다“. 저널리즘의 기반은 언론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에 있다. 언론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헌법이 보장한 기관이다. 그래서 언론은 우리 민주주의를 강하게 하는 규범과 정책, 관행과 법을 옹호해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유명한 언론인이다. 2001년 보스턴글로브 편집국장 당시 천주교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과 이 사실을 은폐한 천주교단의 비리를 보도했다. 이 보도는 퓰리처상을 받았고, 당시 취재 과정을 그린 영화'스포트라이트'는 2016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