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準)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된 새로운 '게임의 룰'로 치러지는 내년 4·15 총선이 107일 앞으로 다가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르면 내달 10일 선대위를 발족한 뒤 본격적인 총선 체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그러나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선대위는커녕 공천 기준 수립과 인적 쇄신, 인재 영입 등 최소한의 총선 준비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선거법 싸움'에서도 졌고 총선 준비도 여당에 철저히 밀렸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너무 다른 두 모습 - 이해찬(왼쪽 사진에서 맨 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당 인재영입 위원들이 29일 오후 국회에서 '2호 영입 인재'인 원종건(오른쪽 하단)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심재철(중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이날 국회에서 공수처법 대응 기자간담회를 갖고 발언하는 모습. 왼쪽부터 김현아 의원, 심 원내대표, 김한표 의원.

한국당 총선기획단은 지난달 "지역구 의원 3분의 1을 컷오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황교안 대표 등은 "최대 50%까지 물갈이해 국민 눈높이를 만족시키겠다"고 해왔다. 입시·채용·병역·국적 등 4대 비리 전력자 제외, 청년 가산점 부여 등 방안도 잇달아 내놨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고 가시적인 후속 조치는 없었다. 한국당 관계자는 "지역구나 전략 공천 기준도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로 선거를 어떻게 치르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윤상직 의원을 포함해 불출마 선언을 한 현역 의원도 6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인재 영입도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1호 영입' 인사였던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은 '공관병 갑질'이란 굴레에 '삼청교육대 발언'이 더해져 '인사 참사(慘事)'로 기록됐다. 그와 함께 영입된 다른 인사들 역시 일부가 표절 논란 등에 휘말리는 등 '전혀 신선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한국당보다 4개월 앞서 공천 기준을 완비한 뒤 인재 영입을 진행했던 민주당과 확연히 대비된다. 민주당은 지난 7월 현역도 경선을 기본으로 하고 여성·청년·장애인 등 신인에게 최대 25%까지 가점을 주기로 하는 종합 공천 룰을 확정했다. 최근엔 현역 의원 평가를 실시, 하위 20% 23명 명단을 확정해 공천관리위원회에 전달했다. 반면 한국당은 공천관리위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이해찬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았던 민주당 인재영입위는 지난 26일 발레리나를 지망하던 여성 척수장애인을 '1호 인재'로, 29일엔 시각장애 모친 슬하에서 자란 20대 남성을 '2호 인재'로 영입했다. 반면, 한국당은 '박찬주 영입' 실패에 위축돼 있다가 민주당이 1호 인재를 발표한 지난 26일에야 염동열 인재영입위원장 주재로 첫 회의를 열었다.

한국당은 일단 다음 달 10일 공천관리위를 발족할 예정이다. 이를 전후해 여성·청년·장애인 등 인재 영입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들이 일방적으로 선거법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총선 준비를 할 여유가 없었다"며 인재 영입에 별다른 성과가 없음을 내비쳤다.

또한 연동형 비례제에 대비한 '비례 한국당' 창당도 내부적으로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는 현역 의원 30명을 내보내 '비례 한국당'을 만들고 거기에 한국당에 갈 '정당 투표'를 몰아주는 구상이다. 연동형 비례제하에서는 '비례대표용' 위성 정당을 만드는 게 의석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비례한국당으로 간다는 것은 한국당 지역구 공천에서 배제된다는 의미인데 그와 같은 자기희생을 감수할 현역 의원들이 있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범여 군소 정당에서 "한국당의 비례 신당 추진은 자충수이자 무덤으로 가는 길로, 한국당 분당(分黨) 시나리오가 될 것"(정의당 심상정 대표)이란 '조소'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당 일각에선 '비례 신당'을 매개로 유승민 의원의 새로운보수당과 '보수 통합'을 추진해보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그런 얘기까지 나오는 것은 결국 보수 통합에 진척이 없다는 의미"라며 "보수 통합에 대한 황교안 대표의 의지가 당초보다 상당히 약해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