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은 '원자력의 날'이었다. 2009년 12월 27일 총 400억달러 규모의 UAE 바라카 원전 4기 수주를 기념해 지정된 법정기념일이었다. 바라카 원전은 1980년대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의 63억달러를 6배 이상 뛰어넘는 사상 최대 인프라 수출이었다. 전 국민이 원전 강국 도약을 축하했다. 원자력 업계는 2020년까지 원전 수출을 10기까지 늘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27일 원자력의 날 행사에서 산업부장관은 '탈원전'을 거론했다. 과기부 차관은 "원전 해체 연구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자력 업계의 불만을 달래려는 것인지 정부 포상·표창을 작년의 80명에서 141명으로 역대 최대급으로 늘렸다. 원자력 생태계 전체를 죽이면서 사탕 몇 개를 더 던져주는 것이다.

바라카원전 수출은 중형 승용차 100만대,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180척 수출에 맞먹는 거대 프로젝트였다. 당시 우리는 '세계 원전 1조달러 시장이 열린다'고 흥분했다. 정부와 업계는 해외 원전 수출을 위한 민관 협의체도 출범시켰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원자력업계는 파장 분위기다. 두산중공업의 원전 부문 공장 가동률은 2017년 100%에서 올해는 50%까지 떨어졌고, 신규 원전 기자재 납품이 마무리되는 내년엔 10% 아래로 추락할 전망이라고 한다. 원자력 산업 중추 회사가 문을 닫는 것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1979년 스리마일 사고 이후 30년간 중단됐던 원전 건설에 다시 발동을 걸었다. 한때 세계 1위 미 웨스팅하우스는 그 첫 시도로 2012년 서머원전과 보그틀원전 두 기씩 모두 4기의 건설에 착수했다. 그러나 30년 공백으로 자국 내 산업 생태계가 붕괴된 상태여서 핵심 부품을 한국 등에 의존해야 했고 인적 자본, 프로젝트 관리 경험의 부족으로 결국 90억달러 손해를 보았고 2017년 웨스팅하우스는 무너졌다. 웨스팅하우스는 1971년 국내 1호 원전 고리 1호기를 지어줬던 기업이다.

지난 10~12일 정부 원전 담당자들과 원자력 부품업계 관계자들이 러시아를 찾아가 세계 최대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사(社)를 방문했다. 인도·터키 등 12국에서 36기 원전을 건설 중인 로사톰에 부품 공급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손을 내민 것이다. 한국 원자력계는 APR1400 독자 노형(爐型)에 대해 지난해 미국 원자력 규제기관의 안전 인증을 따냈다. 40년간 쌓아올린 원자력 기술을 인정받아 이제 본격적으로 세계를 상대로 원전 세일즈를 벌일 수 있는 상황인데, 정부 탈원전에 막혀 러시아·중국에 하청을 구걸하고 있다. 이런 황당한 정부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