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없는 그날까지… 제로 웨이스트 현장을 찾아서

인류가 만들어내는 쓰레기양(量)은 무지막지하다. 세계은행은 인간이 하루에 쓰레기 350만t을 생산한다고 추정한다. 전 세계 해안 1m당 쓰레기봉투 15개를 촘촘히 채워 넣을 수 있는 쓰레기가 한 해에 쏟아진다. 유럽을 중심으로 '쓰레기 생산자'를 그만두고 지구를 좀 깨끗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자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한 사람당 한 해 1L짜리 병 하나를 채울 쓰레기만 만들자는 캠페인도 유럽에선 진행 중이다. 독일과 루마니아의 제로 웨이스트 현장을 탐험대원 두 명이 찾아갔다.

살라체=유효진 탐험대원

"플라스틱 태우는 냄새로 숨을 쉬기 어려웠어요. 재앙 같았죠."

얼마 전 만난 벨라 홀바스 살라체 시장(市長)은 2년 전 마을 모습을 설명하며 코를 부여잡았다. 루마니아 북서부 비호르주(州)에 위치한 시골 마을 살라체(Salacea)는 쓰레기로 악명을 떨친 곳이었다. 무심코 던진 쓰레기와 분리수거 안 된 폐기물들이 도로와 집 정원 등 곳곳에 쌓여 있었다. 쓰레기 무단 투기 문제로 주민끼리 다툼도 많았다.

유럽연합(EU) 도시 가운데 분리수거 비율이 꼴찌였던 루마니아의 이 작은 도시(인구 약 3200명)가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은 '분리수거 모범생'으로 수많은 도시 담당자들이 탐방을 온다. 변화의 계기는 '제로 웨이스트 시티'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도시 차원에서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할 수 있도록 유럽 환경 단체 '제로 웨이스트 유럽'이 만든 일종의 지침이다. 홀바스 시장 등이 나서 마을을 바꿔 보자며 지난해 2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꼴찌라니 수치스럽다'란 공감대가 형성된 터였다. 그로부터 3개월 후, 분리수거 비율이 1% 미만이던 살라체는 이 비율을 EU 최고 수준인 61%로 끌어올렸다. 8%였던 분리수거 참여자는 97%로 올랐다. 유럽 내 가장 성공적 사례로 꼽힌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살라체는 우선 시 예산으로 쓰레기를 5종류로 분리수거하는 용기를 무료로 배포했다. 4주 동안 학교·교회·시청 등에서 팍팍한 분리수거 교육을 가열차게 실시했다. 홀바스 시장은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무엇보다 교육이 급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담당자 수지 주리는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학생들을 최우선적으로 교육해 가정과 지역에서 쓰레기를 줄이자는 '전도사' 역할을 맡겼다"고 했다. 아이들 교육에는 시장이나 목사 같은 지역의 명망 있는 인사가 직접 나섰다. 젊은(31세) 홀바스 시장은 "내가 직접 학교를 찾아 칠판 앞에 서는 일도 많았다"고 했다.

분리수거 배우는 교실 - 루마니아 소도시 살라체는 지난해 초 쓰레기를 '제로'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행한 지 3개월 만에 '쓰레기 지옥'에서 '분리수거 모범생'으로 변신했다. 벨라 홀바스 시장이 한 초등학교를 찾아 분리수거 교육을 하는 모습. 작은 사진은 시가 무료로 나눠주는 분리수거용 쓰레기통. 노랑·파랑·초록, 각각 플라스틱·종이·음식물 쓰레기용이다.

살라체의 한 초등학교를 찾았다. 1학년 교실에서 담임 겔렌 베아타가 세 번 손뼉을 쳤다. 학생 20여명이 책상 서랍에 모아둔 쓰레기 뭉치를 꺼내 교실 뒤로 향했다. 학생들은 교실 뒤쪽, 5개로 나뉜 분리수거 용기에 이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해 버리기 시작했다. 베아타씨는 "그때그때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의식적으로 분리수거를 하도록, 매일 '쓰레기 처리'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채찍'도 동원했다. 시장이 '쓰레기 경찰'을 자처했다. "당신이 버린 쓰레기죠? 한 번만 더 들판에 무단 투기하면 벌금을 물리겠어요." 우리가 찾아간 날, 홀바스 시장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검사했다. 길가에 나뒹구는 쓰레기봉투를 보자 탐정처럼 그 안을 뒤져 명세서를 찾아내더니 '범인' 집으로 향해 무단 투기를 왜 하느냐고 따졌다. 쓰레기 무단 투기엔 벌금 약 40만~50만원이 부과된다. 이 동네 사람들의 일주일치 급여에 육박하는 거금이다.

살라체 주민 절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는 점에 착안해 마을 공터 한쪽엔 '천연 비료 센터'를 만들었다. 음식 쓰레기가 이곳에서 섞이고 건조된다. 비료가 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린다. 지역 주민은 누구든 무료로 비료를 가져다 쓸 수 있다. 가장 놀라운 건 마을 인근, 공터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산'이었다. 재활용을 위한 분리수거를 하고 나서도 남는 쓰레기는 보통 소각하거나 땅에 묻는다. 그러나 이들은 이를 땅 위에 쌓아두기로 했다. 폐기물 관리 업체 에코비호르 직원 클라라 후브너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홀바스 시장은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살라체는 앞으로 이 지역 사람들이 많이 써온 100L 이상 대형 쓰레기봉투는 수거하지 않을 계획이라 한다. 큰 봉지에 쓰레기를 마구 던져 넣는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다. 대신 40L짜리 쓰레기통을 무료로 나눠준다.

사람들은 살라체에서 '제로 웨이스트'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살라체를 돌아보고 나니 기적보다는, 정부와 주민들의 의지를 열심히 모아 한 발짝씩 나아가는 당찬 전진(前進)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