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비가 붙었을 때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을 자주 할까?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는 각종 인재(人災)와 비극적 참사는 왜 되풀이되는 것일까? "다 잘될 거야. 할 수 있다"는 특유의 긍정적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나?

지난 19일 열린 '조선일보 100년 포럼'은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을 통해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미래 과제를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한국 사회가 다음 100년을 준비하려면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부터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며 "일본식 집단주의, 서구식 개인주의도 아닌 한국인의 특성에 맞는 사회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분노 넘치는 한국, 사춘기 앓는 중

주제 발표를 맡은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국가의 운명을 사람 일생에 비유하자면, 한국 사회는 지금 격한 '사춘기'를 보내는 중"이라며 "계층·세대 간 반목, 헬 조선 논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분노 등 지금의 혼란과 갈등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앞으로 청·장년이 될 한국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허태균(맨 왼쪽) 고려대 교수가 지난 19일 열린 조선일보 100년 포럼에서 ‘대한민국을 만든 한국인의 마음’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 자리엔 염재호 포럼 대표와 김정운·박소령·양정웅·양진석·윤희숙·전재성 위원 등이 참석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이 한국인의 '집단주의' 성향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것은 잘못된 진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의 주요 심리적 특성으로 조직보다 주변 사람과 맺은 일대일 관계를 더 중시하는 '관계주의'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주체성'을 꼽았다. 한국인이 무시당하는 것에 특히 예민하고, 시비가 붙었을 때 흔히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존재감을 크게 느끼는 성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양정웅 서울예대 교수도 "최근 소셜미디어 사용 행태를 보면, 일반인도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서 유명인처럼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심리학계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다른 나라보다 유독 '비현실적 낙관성(unrealistic optimism)' 지표가 높게 나타난다. 좋은 일은 객관적 확률보다 더 자주 일어날 것이라 믿고, 나쁜 일은 실제 일어날 확률보다 덜 일어날 거라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한국인의 심리는 맨손에서 시작한 지난 70년의 기적 같은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 측면이 있다.

시스템 개선보다 '나쁜 놈'에만 분노

사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하면서 시스템보다 주변 사람과 맺은 사적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관계주의적 특성이 계층 간 갈등과 분노를 부추기는 부정적 측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허 교수는 "한국인은 국가 같은 조직이 아니라 주변 관계에 집착해 사회 전반적 시스템 개선이 더딘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관계주의 성향의 한국인은 '가장 나쁜 사람'을 찾아내 분노를 집중하는 반면, 구조적 시스템 개선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는 "관계주의적 심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식 조직 문화와 서구적 합리주의가 충돌하면서 생긴 '변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건축가는 "우리 사회는 유럽·일본과 비교해 전문성을 중시하지 않아 기술 축적이 안 된다"며 "주변 사람과 맺은 사회성을 중시하는 특성 때문에 전문성을 중시하지 않는 '얕고 넓은 사회'가 계속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사회가 발전하려면 법과 원칙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조직·시스템보다 사적 관계를 중시한다면 이는 미성숙한 부분"이라며 "미래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심성에 맞는 사회 디자인 필요

최근 몇년 사이 점점 심해지는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서도 우리의 심리 특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허태균 교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하는 2030 세대도 실상은 주변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성'에 더 가치를 두는 것으로 분석했다. 허 교수는 "요즘 청년 세대가 '공정'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사람 대 사람'의 관계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기성세대와 충돌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반면 박소령 퍼블리 대표는 "지금은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이나 20대 직원 선발과 관리가 가장 어려운 숙제"라며 "다른 인류라고도 볼 수 있는 1990년대 이후 세대까지 주체성, 관계주의의 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기 한양대 교수는 "우리 사회가 과거 경제 발전 과정에서 미뤄온 정치 발전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소통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는 사회 구성원의 요구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염재호 조선일보 100년 포럼 대표는 "한국인의 관계주의 네트워크가 조직이 아닌 사욕에 집중되면 부패할 수 있다"며 "한국인 심성에 들어맞는 갈등 해결 모델과 사회 구조를 새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