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등 범여권이 야당이 반대하는 선거법을 27일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하겠다고 했다. 곧장 공수처법도 상정해 연내에 처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이 처리할 선거법과 공수처법은 4월에 발의해 패스트트랙(안건 신속 처리)에 오른 원안(原案)이 아니라 최근 다시 합의해 만든 수정안(修正案)이라고 한다. 국회는 통상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의 일부 내용을 고쳐야 할 경우 의원 30명의 동의를 받아 수정안을 만들어 원안 대신 처리해왔다. 원안 틀을 벗어나지 않고 내용도 몇 줄 바꾸는 선으로 수정안을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 국회 관행이었다. 국회법도 '수정안은 원안 취지 및 내용과 직접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있으며, 크게 바꿀 때는 반드시 교섭단체 합의를 거치도록 했다.

그런데 범여권이 합의한 선거법과 공수처법 수정안은 지난 4월 발의한 원안과는 완전히 다른 법안이라고 할 정도로 크게 바뀌었다. 수정안은 원안과 달리 의석을 현행 '253석+47석'으로 유지하고 30석에만 연동률 50%를 적용한다. 원안에 있던 석패율제는 도입하지 않는다. 내용은 물론 틀이 바뀐 것이다. 범여권 정당들이 한 석이라도 더 가져가겠다며 밥그릇 싸움을 벌인 결과이다.

공수처법 수정안도 원안에 없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선거법에 국민의 이목이 쏠린 사이 민주당이 주도하고 군소 정당이 거들어 공수처에 무소불위 힘을 싣는 조항들이 추가됐다. 어떤 공개 논의 절차 없이 밀실에서 덧붙은 것이다. 이렇게 크게 달라진 수정안을 들고 와 과반수로 밀어붙이겠다고 한다. 여당 내에서조차 "수정안을 이렇게 많이 바꾸는 것은 불법 소지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2012년 국회법 개정으로 도입된 패스트트랙의 기본 취지는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을 제한한 대신 의원 60%(5분의 3)가 찬성하는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선거법과 공수처법도 '사·보임 신청서 팩스 제출, 의장 병상 결재' 등의 우격다짐 끝에 패스트트랙을 타고 본회의에 온 것이다. 그런데 범여권은 형식적으로라도 60% 찬성을 받은 법안과 전혀 다른 법안을 수정안이라고 들이밀어 과반수로 처리하겠다고 한다. 저잣거리의 야바위 같은 법안 바꿔치기와 다름없다.

이번에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내용을 대폭 바꾼 수정안으로 통과되면 앞으로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다. 처음엔 쟁점 없는 법안을 올린 뒤 야당이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수정안으로 바꿔치기해 처리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전체 의석 60% 이상이 찬성한 법안만 다수결로 통과시킬 수 있다는 국회 선진화법은 사실상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거법과 공수처법 통과에 눈먼 범여권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계속 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