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검찰이 노무현재단 은행 계좌를 들여다봤다"며 자신에 대한 ‘불법 사찰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음모론적 사유의 전형적 특징"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유 이사장과 온라인 설전을 벌이고 있는 진 전 교수는 유 이사장의 유튜브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친여 성향 방송인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음모론을 생산해 판매하는 대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진 전 교수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유시민 작가의 ‘계좌추적’ 해프닝에서 진정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그를 지배하는 어떤 ‘사유’의 모드"라며 "이번 사건이 보여주듯이 그는 사안에 대해 냉정하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대신에, 몇 가지 단편적 사실을 엉성하게 엮어 왕성한 상상력으로 ‘가상현실’을 창조하고는 한다. 이것이 ‘음모론적’ 사유의 전형적 특징"이라고 했다. 이어 "이 허황한 음모론이 심지어 여당 수석대변인이라는 분의 입을 통해 공공의 영역인 대한민국 국회에까지 진출했다는 것은 웃지 못할 소극"이라고 했다.

26일 오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진 전 교수는 미디어 학자 월터 옹(Walter J. Ong)의 "미디어는 의식을 재구조화한다"라는 말을 인용해 유 이사장이 의혹을 제기한 배경으로 유튜브 방송을 꼽았다. 그는 "유튜브 방송은 ‘언론’을 참칭해도 기존의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며 "언론에 부여되는 객관성, 공정성, 윤리성의 의무에서 자유롭고, 대중을 위해 그런 매체에 특화한 콘텐츠만 만들다 보면 점차 사유 자체가 그 매체의 특성에 맞춰 논리와 윤리의 영역을 떠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음모론을 생산해 판매하는 대기업이 둘 있다"며 "하나는 유시민의 ‘알릴레오’, 다른 하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이 두 기업은 매출액이 상당한 것으로 안다"며 "그만큼 우리 사회에 그들이 생산하는 상품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다"고 했다.

그는 두 방송을 ‘유시민의 꿈꿀레오’와 ‘김어준의 ‘개꿈공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진 전 교수는 "유시민의 ‘꿈꿀레오’와 김어준의 ‘개꿈공장’은 일종의 판타지 산업, 즉 한국판 마블 혹은 성인용 디즈니랜드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유 작가가 내게 ‘사유 체계’를 점검해보라고 해서 한 번 점검해본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며 "보답으로 유 작가께 본인의 ‘사유체계’를 점검해 보시라는 뜻에서 몇 말씀 드렸다"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이날 오전 다른 글에서는 유 이사장에 대해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는 "유 작가는 ‘99% 검찰이 확실하다’고 하는데 아마 경찰에서 했을 것이라는 검찰 말이 맞을 것"이라며 "경찰에서 뭔가 냄새를 맡고 내사에 들어간 모양이죠"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또 "MB 정권 하에서 나도 당해봤다"며 "검찰하고 경찰 두 군데에서. 통보유예가 걸려 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통보가 온 다음에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장 뒤져서 뭔가 건수를 잡으려 했는데 잘 안 된 모양이죠"라며 "기다리면 어느 기관에서 했는지 알려준다. 그러니 딱히 걸릴 게 없으면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될 듯"이라고 했다.

지난 24일 유튜브 채널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에서 진행된 라이브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 라이브’의 한 장면.

유 이사장은 지난 24일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어느 경로로 확인했는지 지금으로선 일부러 밝히지 않겠지만 노무현재단의 주거래은행 계좌를 검찰이 들여다본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 개인 계좌, 제 처 계좌도 들여다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검찰의 재단 계좌 조사 사실만 확인했고 개인 계좌 조사 여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공개 질의를 하겠다. 검찰이 재단 계좌를 들여다본 사실이 있는가. 있다면 사전에 알았나. 제 개인 계좌를 들여다봤는가"라며 "재단이든 개인 계좌든 들여다봤다면 어떤 혐의로 계좌 추적 영장을 발부받았는지 내용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만약 합당한 이유 없이 했다면 검찰을 비판하는 개인의 약점을 캐기 위해 뒷조사와 몹시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을 한 것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같은 방송에서 유 이사장은 진 전 교수에게 "스스로 자신의 논리적 사고력이 10년 전에 비해 얼마나 감퇴했는지 자가진단해봤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자 공식 입장문을 내고 "노무현재단, 유시민, 그 가족의 범죄에 대한 계좌추적을 한 사실이 없다"며 "법 집행기관에 대한 근거 없는 악의적 허위 주장을 이제는 중단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