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사회학

세밑이라 그런지 우리나라 경제계를 이끌던 거목들의 잇따른 별세 소식이 유난히 크게 가슴을 울린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이어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최근 세상을 떠났다. 올봄에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갑자기 타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초석을 깐 인물들이 역사의 무대 뒤로 속속 사라지고 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거지만 재계 1·2세대의 연이은 부음에서는 한 세대의 종언 혹은 한 시대의 파장(罷場)이 읽힌다.

더더욱 허전한 것은 우리 사회가 이들과 작별하는 방식이다. 가족장이든 회사장이든 비공개장이든 선택은 유족 몫이다. 장례 간소화라는 측면에서는 돋보이기까지 한다. 이들에게 국가장이나 사회장이 마땅하다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좌파 단체들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치르는 '시민사회장'이나 '민주사회장'이 부러운 것은 더욱더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대표 경제인들의 마지막 길에 좀 더 범사회적인 애도와 예우가 있으면 좋았겠다. 그들은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라 사회, 문화, 교육, 스포츠 등에 걸쳐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광의의 국가 건설자였다. 사업가 이전에 애국자였던 것이다.

나라를 세우고 지키고 키워낸 인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대접에 우리는 유난히 인색한 편이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류성룡은 전쟁이 끝나면서 '나라를 그르친' 이유로 파직당했다. 그가 명예를 온전히 회복한 것은 무려 200여 년 뒤였는데, 얼마 안 가 조선은 패망했다. 독립과 건국, 호국과 부국에 매진한 근현대사 속 어떤 지도자도 자국 지폐에 얼굴을 싣지 못한 것이 우리나라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진보 좌파가 득세하면서부터는 대한민국 역사를 깎아내리고 조롱하는 게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이로써 우리는 영웅이 없는 나라가 됐다. 사실은 영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영웅을 만들지 않는 나라다. 이에 비해 강대국일수록 영웅도 많고 직군도 다양하다. 이는 영웅이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믿는 영웅사관(英雄史觀) 때문이 아니다. 대신 영웅을 창조하고 공유하는 것이 사회 통합과 발전에 이롭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평소 정치적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전직 대통령을 일괄 존경하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 파리의 가로 이름에는 전직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 장관, 시장 등이 유난히 많이 들어 있다. 중국의 국가 행사 때는 최고 지도자가 모든 전임자를 치하하는 것이 불변의 관례다. 보기에 따라 일본은 동상(銅像)의 나라다. 수많은 역사 인물이 이래저래 영웅이 되어 지금도 곳곳에 살아 있다.

프랑스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에 따르면 영웅이란 한 나라의 사회자본이다. 중요한 것은 진짜 영웅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물론 천부적 능력과 비범한 인격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영웅이 없지 않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영웅을 사회적으로 발견하고 발명하는 일이다. 영웅 만들기란 사회적 필요에 따라 존경 대상으로 공감하고 모범으로 기억하는 일련의 열린 과정이다. 선진국 신문들이 부고 기사를 중시하는 데는 이런 맥락이 있다. 가령 뉴욕타임스에는 부음 전문 기자만 여럿 있고, 그 부서에는 가장 뛰어난 기자들이 모인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는 고인의 업적만이 아니라 과오도 가감 없이 기록한다.

세상에 탈 없는 인물이 어디 있고, 흠 없는 인생 또한 어디 있으랴. 누구나 영웅이라는 말도 아니고 공과 시비(是非)를 하지 말자는 뜻도 아니다. 그럼에도 영웅을 착착 쌓아가는 나라가 있고 탈탈 쓸어내는 나라가 있으니, 우리는 분명히 후자에 해당한다. 특히 작금의 '386' 운동권식 역사관과 세계관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영웅들을 도매금으로 매도해버렸다. 영웅이 아니라 민중이 역사를 만든다는 미명 아래 실제 이들이 한 것은 자기들만의 우상숭배와 우신예찬(愚神禮讚)이었다. 하지만 2019년 올 한 해, 그들의 민낯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민주주의나 사회 정의, 한반도 평화를 입에 담을 명분과 염치는 그들에게 더 이상 없다.

한 개인을 떠나보내는 형식이나 한 시대의 막을 내리는 방식에서 우리 사회는 좀 더 깊은 이해와 배려, 성찰이 필요하다. 덧셈의 역사가 아닌 뺄셈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나라의 정신적 영토를 점점 더 작게 만들 뿐이다. 이편저편 영웅을 널리 받아들이는 사회, 크고 작은 영웅을 함께 포용하는 사회, 그것은 미래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원천이기도 하다. 영웅도 그 나름대로 국력이자 국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