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비행기가 총알처럼 하늘로 발사된다. 엔지니어가 발사 버튼을 눌러 날려보낸 드론(무인 비행기)은 순식간에 까마득히 높이 올라가 10분 정도를 날아간다. 미리 입력된 경로를 따라 날던 드론은 어느 한 지점의 상공을 지나갈 때 동체 아래 문을 열고 작은 상자를 떨어뜨린다. 작은 낙하산이 펼쳐진다. 상자는 무사히 땅에 내려앉는다. 이 상자엔 약(藥)이 들었다. 이날 시험 비행은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데이비스에 있는 드론 개발 스타트업 집라인(zipline)이 수행했다. 이런 시험비행을 하루에 150번 정도 한다.

의약품과 혈액을 배달하는 미국 스타트업 집라인의 메디컬 드론이 약을 전달하는 모습. 위성항법장치를 활용해 정해진 위치로 날아간 드론은 낙하산 달린 상자를 환자가 있는 장소에 떨어뜨린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아프리카 등에서 유용하다.

집라인은 '메디컬 드론'이라 불리는 무인 비행기를 개발하고 있다. 도시 사람들은 약은 약국에서 사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의료 시설이 열악한 지역에선 약을 제때 배달받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비가 오면 도로가 다 쓸려나가는 아프리카나 섬이 많은 동남아 개발도상국 등에선 약 배달 문제는 종종 생명과 직결된다. 켈러 리나우도 집라인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14억명이 우리 드론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100㎞ 나는 드론…피와 약을 나른다

드론으로 의약품과 혈액, 심지어 장기를 배송하는 기술은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규제가 만만찮아 상용화는 다소 느린 편이지만 안전하고 빠르면서 값싸게 물건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미래의 기술로 주목받으며 많은 대학과 기업이 메디컬 드론을 만드는 중이다.

메디컬 드론은 기반시설이 좋지 않은 저개발국에서 특히 유용하다. 집라인 엔지니어 존 슈빈트의 설명이다. "르완다에선 전력이 불안정해 많은 병원이 냉장고에 혈액을 최소한만 보관합니다. 혹시라도 정전이 되면 혈액을 다 못 쓰게 되니까요. 도로가 부서지는 일도 빈번하지요. 이런 지역에선 메디컬 드론의 활약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조립하기 쉽게 만든 메디컬 드론 이달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집라인 시험 비행장을 찾은 정윤석(왼쪽) 탐험대원이 메디컬 드론을 살펴보고 있다.

세계 최초로 메디컬 드론을 상용화한 집라인은 현재 가나·르완다에서 드론으로 의약품과 혈액을 배송하고 있다. 섬이 많은 필리핀으로도 서비스를 확장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드론은 90분 동안, 100㎞까지 난다. 한 번에 1.8㎏을 실을 수 있는데, 성인 2명 혹은 아이 3명을 살릴 수 있는 혈액량이다. 2016년 시작해 2만5000번이 넘는 배송 경험을 쌓았다. 아프리카 내 집라인 센터(일종의 허브)에서 드론이 출발하면 혈액이나 의약품이 필요한 곳으로 10분 내로 배송을 끝낸다고 한다.

집라인의 메디컬 드론을 조립해 보았다. 본체·배터리·날개로 이뤄진 드론은 간단한 설명만 들으면 쉽게 '합체'가 가능했다. 드론 테스트를 담당하는 조셉 독스테이더는 "드론을 누구나 손쉽게 조립해 발사하도록 만들었다"며 "개발도상국의 현지인들이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고도 드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라고 말했다.

◇수술 성공률 높이는 신속한 장기 이송

미국 동부지역 메릴랜드주에 있는 메릴랜드대는 이식용 장기를 옮기는 드론을 도입했다.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신장 이송에 성공했다. 메릴랜드대 드론 비행 시험장에서 본 드론은 4개의 날개가 달린 모습이었다. 날개 아래 드론 본체엔 장기를 실을 수 있는 상자가 장착돼 있었다. 메릴랜드대 병원의 외과 의사이자 드론 프로젝트 책임자 조셉 스칼리아 교수는 "신장부터 드론 이송을 시작한 이유는 신장이 진동에 비교적 덜 민감하고 크기가 레몬 한 개 정도로, 비교적 작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첫 테스트 때 볼티모어 남서부 지역의 한 병원에서 기증받은 신장을 드론에 실어 메릴랜드대 병원까지 옮겼다. 첫 시험비행 때는 사람 없는 철로나 경찰이 사전 계획에 따라 통제한 도로 위를 지나갔다. 차로 최소 20분은 걸리는 4.5㎞ 거리를 10분 만에 도착했다. 교통 체증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안전하게 도착한 신장은 8년간 투석을 받던 44세 여성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메릴랜드대 병원 팀은 간·췌장·피부 조직 등 다른 장기 배송도 목표로 한다.

스칼리아 교수는 "더 빨리 장기를 전달해 이식할 수 있다면, 수술 결과는 훨씬 좋아진다"고 했다. "그동안 때때로 느꼈던 좌절감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장기이식은 시간이 생명입니다. 기증자에게서 받은 장기를 얼마나 빨리 이식하느냐가 수술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지요. 그런데 미국에서 매년 3500여 장기가 이송 지연 등의 문제로 폐기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드론이 이송 임무를 제대로 잘 수행한다면, 수천 명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단 뜻입니다." 메릴랜드대 병원 팀은 미국 전역에서 다른 장기도 효율적으로 이송하는 방법을 6개 팀과 협력 중이다. 응급의학과 의사이자 메디컬 드론 개발사인 '드론딜리버리시스템(Drone Delivery Systems)' 공동 창업자 제러미 터커는 "심장마비 환자가 구급차를 부르면 10~15분이 걸리지만 드론을 잘 이용하면 2~4분 정도에 제세동기를 전달할 수 있어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며 "드론으로 의약품·지혈대·붕대 등 다양한 물품을 배달, 재난·응급 등 여러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드론딜리버리시스템은 최근 과테말라 안티과에서 제세동기와 의약품 배송 테스트를 진행했다.

바이오 융합공학을 전공하는 나는 시골 요양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했을 때, 그곳 환자들이 약을 받기 위해 얼마나 멀리 이동해야 하는지를 보았다. 병원이나 약국에 가기 어려운 사람에게 누군가 약을 배송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아프리카부터 유럽과 미국에 이르기까지 메디컬 드론은 곳곳에 '출동'해 환자가 받는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고 있었다. 최근엔 구글·보잉 같은 거대 기업도 뛰어들었다. 산업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기술·규제 측면에서 여러 가지 해결할 과제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생명을 더 구한다'는 목표를 향해 기업·정부·의학계 등이 머리를 맞댄다면 이 기특한 메디컬 드론이 우리 인류를 더 건강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