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현 경제 상황에 대해 "민간 활력이 저하되고 생산성과 잠재성장률이 하락·둔화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성장 활력 제고에 주력하겠다는 내년도 경제 운용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성장률이 10년 만에 최저인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총선이 있는 내년엔 어떻게든 경기를 반등시키겠다고 총력전에 나선 것이다. 기재부 차관은 "한국 경제가 궤도를 상당히 이탈해 있다는 절박감이 담겨 있다"고 했다.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칠 정도로 경제가 침체된 상황을 두고 '궤도 이탈'이라는 표현을 썼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말은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 정부 주도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반시장·반기업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정부가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같은 경제 운용 계획을 놓고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정반대 진단을 내렸다. "경제는 꾸준히 전진하고 있다" "고용의 양과 질 모두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일자리·분배 정책의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아직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면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설명하라"고도 했다. 경제는 좋은데 홍보 부족으로 국민이 못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경제 현실을 놓고 실무 부처는 "궤도 이탈"이라는데 대통령은 "옳은 방향으로 전진"이라고 한다. 기재부는 경제 운용의 궤도 수정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기존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한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정부인가.

하루 뒤 국무총리 후보자는 삼권분립 훼손 논란을 감수하고 총리직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울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는 이유를 댔다. 총리가 되어 "경제 활력을 찾는" 시급한 현안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국무총리가 될 사람까지 "어렵다"고 하고 기획재정부는 "절박하다"고 하는데 대통령은 "경제가 순항 중"이라고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유체 이탈 화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같은 정부 안에서 서로 정반대 얘기를 하는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