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15 총선에서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를 놓고 이낙연 국무총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간 '빅 매치'가 성사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종로가 지역구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지난 17일 차기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현재 대선 주자 지지도 1·2위인 여야(與野) 대표 인사가 '대선 전초전'을 벌일 여지가 생긴 것이다. 양측 모두 "종로를 포함해 지역구 출마 여부 자체를 언급하기 이른 시점이지만, 당이 원한다면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18일 "이 총리가 호남에서 4선(選)을 했지만 호남 4선은 수도권 재선보다도 무게감이 덜하다"며 "총리 출신이 서울에서 출마할 만한 지역도 몇 없는데, 때마침 종로가 비게 됐으니 종로 출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했다. 이 총리의 측근인 한 여권 인사도 "당초 지역구 출마보다는 비례대표를 겸하는 선거대책위원장에 무게를 뒀는데, 정 전 의장의 총리 지명이 큰 변수가 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낙연(왼쪽 사진) 국무총리가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 봉안식에 참석했다. 황교안(오른쪽 사진) 자유한국당 대표는 같은 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여당을 규탄하는 연설을 했다. 이 총리와 황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해 빅매치를 벌일 가능성에 대해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총리 입장에선 종로에서 당선 시 전남지사 출신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전국구 대선 주자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격전지에 출마해 당에 기여했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은 이날 "이 총리가 종로에 출마하리라 본다"며 "민주당 핵심 세력은 '어떤 경우에도 종로를 뺏길 수 없으니 이 총리가 (종로로) 가야 한다'는 말을 해왔는데, 정 전 의장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됐지 않느냐"고 했다.

다만 민주당 안팎에선 "이 총리가 총선에서 '간판' 역할을 하려면 지역구를 맡을 게 아니라 이해찬 대표와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아 전국 지원 유세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총리의 '정치적 멘토'로 알려진 정대철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오늘 이 총리에게 '종로에 출마하지 말고 선대위원장으로 전국을 누비며 후배들을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했다. 이 총리 자신은 올 들어 '총선 역할론'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당이) 시키면 합당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 총리의 '종로 출마설'이 불거지면서 야권에선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종로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황 대표는 올 2월 당대표 취임 직후부터 꾸준히 종로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그간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 쪽에 무게를 둬 왔다. 한국당 내에선 '선거를 치러본 경험이 없는 황 대표가 종로에서 지고 전국 선거도 패배할 경우 야권이 받을 타격을 수습할 수 없다'는 우려도 컸다.

하지만 총선이 불과 4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국당 내 기류도 바뀌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민주당과 지지율 격차가 다시 벌어지는 상황에서 한국당 총선기획단은 최근 전직 당대표 등 '지도자급' 인사들에게 험지(險地) 출마를 공개 요구했다. 그러자 홍준표 전 대표,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김태호 전 경남지사 측에선 '황 대표부터 희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김세연 전 여의도연구원장도 지난 6월 "내년 총선에서 황 대표가 종로에 출마하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했었다. 한국당 관계자는 "황 대표가 50% 현역 물갈이 등 고강도 쇄신까지 예고한 만큼 상징성이 큰 종로 출마 등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황 대표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내가 어디를 원하는가보다 당의 전략이 우선"이라며 "당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 따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낙연 총리라는 분에 대해선 전혀 유념하지 않는다. 총선에서 내 행보에 이 총리는 전혀 변수가 되지 않는다"면서 "당의 승리 여부만이 관심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