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55) 영국 총리가 지난 12일 총선에서 보수당의 압승을 이끌며 입지를 굳혔다. 도널드 트럼프(73) 대통령과 함께 대서양 양안의 미국과 영국이 동시에 강한 개성을 지닌 보수파 리더가 이끄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들이 1980년대 양국 관계를 최고로 이끌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정상 케미(chemistry·궁합)'를 재현할지를 두고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 영미 언론이 다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극우·마초 이미지 두 정상

영국 총리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각) 존슨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총선에서 보수당을 압승으로 이끈 것을 축하했다. 총리실은 "두 정상은 양국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하고, 특히 야심 찬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포함해 안보·무역 등의 사안에서 긴밀한 협력을 지속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최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압승하면서 미국과 영국은 동시에 강한 개성을 가진 보수파 리더를 갖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 대통령과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4일 영국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

세계 자유 진영을 이끄는 두 정상은 거구에 금발 외모, 극우·마초적 이미지, 자국 중심주의 정책과 선동적 쇼맨십을 빼닮았다는 평을 들었다. 트럼프는 존슨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12일 영국 총선 출구조사가 나오자마자 "존슨이 대승을 거둔 것 같다"는 트윗을 날렸고, 7월 존슨이 총리로 선출됐을 때도 "영국의 트럼프가 총리가 됐다"고 기뻐했다. 이에 비해 존슨은 국내 정서를 의식, 트럼프 대통령과 엮이는 모양새를 꺼렸다. 그러나 존슨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각국과 맺어야 할 새 무역협정의 성패가 최대 시장인 미국에 달려 있는 만큼, 트럼프와우호 관계에 공을 들일 것이란 전망이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외교적 호흡을 맞춰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존슨은 지난 5개월간 브렉시트 혼란 속에서 '역대 최단명 총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고, 트럼프도 올 하반기 내내 탄핵 정국에서 휘청였다. 그러나 존슨이 총선에서 예상 밖의 압승을 거두면서 향후 5년간 집권할 기반을 닦았고, 트럼프도 여당의 비호 아래 탄핵 위기를 넘기고 2020년 재선에 올인할 분위기다. 향후 수년간 외치 부문에서 협력하면서 세계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레이건-대처는 신자유주의 이끌어

같은 이념 성향을 가진 정상이 함께 집권하는 것은 미·영 관계에서 흔치 않은 호재다. 양국이 기억하는 최고의 시절은 40여년 전이다. 1980년대 각각 보수 정당을 이끈 레이건 대통령과 열네 살 어린 대처 총리는 10여년간 '철학적·정치적 솔메이트(soulmate)'로서 '정치적 연애를 했다'고 일컬어질 정도였다.

당시 두 정상은 모두 국내적으론 전임 좌파 정권의 과도한 정부 개입에 따른 사회 비효율과 재정 적자, 대외적으론 소련과의 냉전에 맞서 자유 진영을 지킨다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1980년대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분이 깊었던 두 사람은 신자유주의·반공 정책으로 함께 자유 진영을 이끌었다.

이들은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라는 반(反)규제·반노조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함께 펼치면서 물 샐 틈 없는 공조를 자랑했고, 이는 당시 유럽과 아시아 자유 진영에도 큰 영향을 끼치면서 국제 정치 지형을 바꿔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무시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것 같지만, 역사적으로 특수한 동맹인 영국과의 관계에서만큼은 이 80년대 모델을 지향한다고 미 언론들은 전한다. 2017년 취임하자마자 당시 테리사 메이 총리를 가장 먼저 국빈으로 초청하고, "레이건-대처 시대와 같은 동맹 관계를 되살리자"고 할 정도로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메이가 브렉시트를 다루는 방식은 트럼프의 성에 안 찼다. 이제 트럼프는 자신과 연결 고리가 생긴 존슨을 과거의 낭만적 영·미 관계, 나아가 자유·보수주의의 새 시대를 함께 정의할 파트너로 여긴다는 것이다.

트럼프-존슨은 자유무역 공격

트럼프와 존슨이 재현할 21세기 '영·미 보수의 궁합'은 레이건-대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FT 등은 전망했다.

존슨이 이번 총선에서 기존 체제를 흔드는 슬로건을 내세워 노동당 텃밭인 레드월(red wall)을 잠식한 것은, 2016년 트럼프가 '반이민'과 '보호무역'을 내세워 미 중서부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rust belt) 경합주 승리를 거머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트럼프와 존슨의 이 첫 선거의 공통점은 향후 국제 정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 확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레이건-대처 시대 이래 세계 자유 진영에서 초당적 합의를 이뤄온 '친(親)이민·자유무역·미국의 리더십'이라는 세 축이 트럼프와 존슨을 통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도 트럼프와 존슨이 국수주의적 포퓰리즘과 반(反)엘리트주의, 저금리에 기댄 재정 완화 정책 등을 새로운 보수 정치의 문법으로 공식화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