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을 꺼내자 지방자치단체와 연구자들이 하이에나처럼 덤벼들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00대 국정 과제로 추진한 '가야사 복원'에 대해 학계 내부에서 생생한 비판이 나왔다. 신라·가야사 연구자인 주보돈(66) 경북대 명예교수는 계간 '역사비평' 최근호에 '가야와 무관한 지자체까지 모두 45곳이 정부 지원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며 '연구자까지 적극 나서 지자체의 구미에 맞추려고 심각한 수준의 역사 왜곡으로 나아갈 소지가 크다'고 썼다. 2년여 진행된 가야사 광풍(狂風)을 복기한 주 교수는 "엄청난 정부 예산이 들어갈 '가야사 복원'이 토목 사업으로 흐르고 있다"고 했다. 주 교수는 한국고대사학회장과 한국목간학회장을 지냈다.

―가야사 복원을 둘러싸고 그간 무슨 일이 벌어졌나.

"지자체마다 중앙 정부 예산을 노리고 너도나도 가야사를 들고 나왔다. 지난 8월 국토연구원 회의에 가보니 가야 관련 지자체 수가 45개로 늘었다. 2년 전 100대 국정 과제 선정 무렵 이미 25개였는데 배 가까이 늘었다."

16일 경주 용강동에서 만난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연구자들이 지자체 입맛에 맞춰 가야사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현상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신라·백제보다 주목을 덜 받았기 때문에 지역민들의 숙원 사업이 된 것 아닌가.

"가야사를 복원하려면 기초 자료에 대한 조사와 정리에 집중 투자하고 역사를 과장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연구자들까지 나서 역사 왜곡을 일삼는다. '전북 가야' '장수 가야'처럼 당시 쓰지도 않았을 개념을 동원해 가야와의 인연을 내세운다. 제멋대로 과대 포장한다. 가야사가 희화화하고 있다."

―2017년 8월 국회에서 열린 가야사 학술회의를 정치적 쇼라고 비판했다.

"그 회의는 가야사 복원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가늠하는 자리였다. 종합토론 좌장 자격으로 사회를 맡아 자세히 지켜봤다.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등 50명 넘는 정치인이 앞자리를 차지해 매스컴용 사진만 찍고 빠져나갔다. 학술회의는 정치를 위한 들러리였다. 발제자들은 예산만 받으면 가야사 연구를 가로막아온 장애물이 해소되기라도 하듯 나섰다."

―가야사 복원이 지역 개발 성격의 토목 사업 중심으로 이뤄지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무덤 발굴도 쇼하듯 이뤄진다. 지난달 말 경남 창녕서 도굴되지 않은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을 공개한다며 뚜껑을 들어 올렸다. 5세기 중후반 무덤이면 가야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도 가야라고 못 박았다. 과장을 넘어 역사 왜곡 가능성까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가야사 복원을 국정 과제로 제기했을 때, 하일식 한국고대사학회장은 "대통령이 특정 역사 연구나 복원을 지시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은 가야사 복원을 영호남 소통을 위한 좋은 소재라고 생각해서 얘기했을 것이다. 나쁜 뜻은 아니다. 문제는 결과다. 지자체들이 중앙 정부 예산을 놓고 결투하듯 싸우면 영호남 소통과 화합이란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 때 1290억원을 들여 가야사 복원을 진행했는데, 당시 대통령·총리가 연고가 있는 김해에 집중돼 다른 지역이 소외됐다. 이번 정부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정치가 역사에 개입하면 의도와 상관없이 돌아간다.

"학술 분야의 정치적 개입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런 요구에 편승한 연구자들은 곡학아세했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가야 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

"원래 고령 대가야 고분으로 시작했다. 포도송이처럼 밀집해 있고 낮은 구릉에 조성돼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적 입김 때문에 함안, 김해가 포함되더니 7개 지역으로 늘어났다. 지역 간 공통분모를 찾기 힘들어 제안서 작성조차 힘들었다. 유네스코 등재를 훼방 놓는 행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주 교수는 세계유산 후보 고분 중 "가야 문화가 아닌 신라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정치 논리에 따라 기존 연구 성과를 무시한 역사 해석의 오류"라고도 했다. 그는 '역사비평' 기고에서 '가야사 복원은 정치성이 강한 탓에 또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상처를 남기고 끝맺게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글의 제목은 '슬픈 가야, 만들어진 가야'였다.

[폭주하는 가야사 예산… 4개 지자체만 3조원 추진]

정부의 ‘가야사 복원’ 예산은 수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화재청이 2019년 조사 연구·유적 정비·토지 매입으로 잡은 예산만 865억원(국비 591억5000만원, 지방비 273억5000만원)이다. 문화재청 가야사 예산(국비)은 2017년 94억원, 2018년 165억원으로 해마다 급증했다. 하지만 예산 규모가 큰 국토교통부에 비하면 ‘푼돈’이다. 지난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가야문화권 포럼에선 지자체가 요구하는 사업비가 3조~4조원 규모에 달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017년 8월 본지가 확인한 경남·북, 부산, 전북 등 4개 지자체가 추진 중인 가야사 예산은 2조9681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