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가 옳다고 믿는 가치관이나 신념을 미래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참교육이 아니라 주입(注入) 아닌가."

김명섭(56·사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16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는 1980년대 베스트셀러 '해방 전후사의 인식' 필진으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을 지냈다.

그는 한국사 교과서의 이념 편향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근현대사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꼽았다. 교과서에서 현 정부와 최근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를 덧붙여 기술하는 게 '역사의 정치화'를 불러올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최근 학계에서도 역사를 정쟁(政爭)의 대상으로 동원하는 '역사의 정치화'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김 교수는 "현대사는 역사와 시사(時事)의 경계부터 모호하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합의가 안 된 부분이 적지 않다"며 "첨예한 쟁점이 즐비한 현대사를 학생과 학부모들이 민감하게 인식하는 교과서와 대입 수능에 반영하는 것이 현명한지 되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소 한 세대 전인 '30년 이전'을 기술 대상으로 삼는 등 학계의 합의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북한 등 공산권 1차 사료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한 현대사를 다루다 보니 불완전한 기술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지적했다. 6·25 전쟁의 경우 북한의 '남침(南侵)'이라는 사실에 맞서 과거 수정주의 계열 학자들이 '북침설'이나 '남침 유도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1994년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에 건네준 소련 극비 문서로 전쟁 직전 김일성이 남침하기 위해 소련 스탈린에게 무려 48차례나 건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 교수는 "과거 냉전 구도 속에서 공산주의의 폭력성에 맞서 싸웠던 반공(反共) 진영의 폭력성만 일방적으로 드러내는 서술 방식이 옳은지도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독일 등 유럽도 좌우 정치 세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교과서 서술을 두고 소모적 논쟁이 불거지는 경우는 드물다. 김 교수는 "교과서는 특정 정치 입장이나 사관(史觀)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사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합의가 지식인 사회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히려 1990년대 냉전 해체 후 유럽 각국은 균형 있는 과거사 서술을 위해 공동 교과서 집필에 나서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역사 교과서 서술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의 틀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