슭곰(큰 곰의 옛말)의 발이 슭곰발이다. 국어사전에 없는 이 말이 널리 알려진 건, TV 예능프로의 끝말잇기 게임 덕이다. '산기슭'이 나올 때마다 새 말이 이어지지 못하고 게임이 끝나버리는 일이 되풀이되자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이름을 빌려온 한글 디자인 끝말잇기 모임 '슭곰발'의 첫 전시가 26일까지 서울 서교동 윤디자인갤러리에서 열린다. 이가희·이주현·정태영·이승협·이수연 5명의 서체 디자이너가 올해 인스타그램에서 진행했던 끝말잇기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전시로 제목은 '슭곰발자국'. 앞사람이 한글 레터링(문자 도안) 작업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다음 사람이 이어지는 단어를 24시간 안에 다시 올리는 방식으로 8개월간 123개 단어를 완성했다. 가독성이 우선인 폰트(컴퓨터용 서체)와 달리 레터링에서는 디자이너가 개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123점의 레터링〈사진〉은 하나하나가 작품이면서, 한데 모여 한글의 조형적 가능성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증명하는 또 다른 작품이 된다.

전시장에선 레터링에 쓰인 글씨체를 컴퓨터로 타이핑해 볼 수도 있는데, 한글 전체를 디자인한 작업은 아니라서 없는 글자를 치면 곰 발바닥 모양이 화면에 나온다. 입구에 놓인 방명록에선 방문객들의 손글씨 끝말잇기가 진행 중이다. 소셜미디어를 발판 삼아 게임처럼 작업을 해냈다는 점 자체가 한글을 대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다.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