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부터 사용될 금성·동아·미래엔·비상·씨마스·지학사·천재·해냄에듀 등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전시본이 경제 발전과 산업화 과정은 축소하고 민주화와 촛불 집회는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좌편향'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을 아예 다루지 않은 교과서도 많았다. 이 8개 교과서는 지난달 27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을 통과했다. 일선 학교들은 이 8종의 교과서 가운데 하나를 정해서 한국사 교과서로 사용하게 된다.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누락

고교 한국사 8종 교과서 전부에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라는 표현이 빠졌다. 8종 교과서 모두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유엔 감시 아래) 선거가 가능했던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서술했다. 대한민국을 38선 이남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축소 서술한 셈이다.

이 같은 서술에 대해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유엔 총회 결의의 앞뒤를 교묘히 연결한 오역"이라며 "1948년 당시 국제사회 공인 아래 세운 합법 정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했다. 해방 후 남한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서술하고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기술한 교과서도 6종에 달했다. 강 교수는 "대한민국은 불완전 국가, 북한은 완전한 국가라고 시사한 셈"이라고 했다.

북한의 도발은 최소한으로 다뤄졌다. 8종 중 6종이 천안함 폭침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3종은 천안함 폭침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고, 다른 3종은 '천안함 사건' '천안함 침몰'로 표현해 도발 주체가 북한임을 명시하지 않았다. 지학사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 둘 다 다루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노력"… '文비어천가' 교과서

8종의 검정 한국사 교과서는 현 정부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두드러졌다.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은 "역사 교과서에 임기가 진행 중인 현 정권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 현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관계의 경우 "고조되던 한반도의 긴장은 2018년 문재인 정부의 노력으로 큰 전환점을 맞이하였다"(씨마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면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자 경의선·동해선 철도 연결 재개, 개성 공단 재가동 등 경제 협력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동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핵 포기를 종용하면서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 대화의 의지를 표명하고, 북한도 이에 호응하여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였다"(미래엔)고 했다.

8종 모든 교과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해 우호적으로 서술한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경향도 보였다. 씨마스 교과서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권위주의를 청산하고자 했다" "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와 같이 주로 긍정적 평가를 하면서, 부정적 평가는 "빈부 격차를 해소하거나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하지는 못하였다" 단 한 문장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해 사회 갈등을 유발하였다" "소득 재분배에 소극적이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다" "북한과 대립하였다" 등 4문장,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였다" "시민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였다" "남북 관계를 크게 경직시켰다" 등 3문장에 걸쳐 부정적 서술을 했다.

◇집필 기준부터 좌편향

문제가 되는 '좌편향 교과서' 8종은 지난해 6월 교육부가 내놓은 새 교과서 집필 기준을 따랐다. 당시 집필 기준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라는 서술이 삭제되고,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꿔 논란이 됐었다. '북한 세습' '북한 도발' '북한 주민 인권' 등 북한에 부정적인 표현들도 모조리 빠졌었다. 집필 기준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부터 고교에서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를 바로잡을 근거도 없는 것이다. 박인현 대구교대 교수는 "당시 집필 기준 자체가 좌편향됐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결국 최종 확정됐다"며 "집권 세력이 자기 입맛대로 학생들이 편향적 역사 교육을 받도록 방조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