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협상이 12일(현지 시각) '1단계 합의'를 이루면서, 지금까지 무역 갈등으로 인한 피해를 주요국 중 가장 많이 볼 것으로 예측됐던 우리나라는 일단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은 지난 1~9월 기준 수출 감소율이 전년 대비 -9.8%에 달해 전 세계 교역 상위 10개국 중 가장 피해가 컸다. 한국산 중간재·부품 등을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중국 수요가 줄어들면서 한국 수출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에 미·중 무역 분쟁이 길어질 경우, 중국 경제 둔화가 가속화하며 내년 한국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이날 합의로 미·중 양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 전반에 드리워졌던 불확실성이 일부 걷힐 것으로 보인다. KB증권은 "이번 미·중 양국의 GDP 성장률은 기존 전망치보다 각각 0.13%, 0.28%포인트씩 더 오를 유인이 생겼다"면서 "향후 미국과 유럽에서의 저금리 기조도 유지되면 글로벌 기업들이 미뤄왔던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무역 분쟁의 '종료'를 뜻하진 않기 때문에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은 "양국 간 분쟁 원인이 됐던 산업보조금·환율 조작·지식재산권 등의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낙관적인 해석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IT·정유·석유화학 "올해 최고의 뉴스"

국내 산업계에선 업종별로 상이한 반응이 나왔다. 우선 국내 IT 업계 전반엔 호재가 될 분위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현지에서 각각 낸드플래시와 D램을 제조하고 있고, 미국은 이 제품들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해왔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통해 관세 부과가 취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가격도 중국발 수요 증가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관계자는 "이대로 양국이 최종 합의를 하고 관세 철폐까지 하게 된다면 중국에서 생산하는 기업 입장에선 리스크를 덜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SK하이닉스 측도 "미국이 추가 제재를 할까 우려했는데, 이번 합의로 불안감이 다소 해소됐다"고 했다.

삼성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부품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중국산 아이폰 관세 부과 우려가 사라진 점도 "환영할 일"이라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연말 소비 시즌에 판매량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올해 최고의 뉴스"라며 반기고 있다. 정유업계는 올해 정제 마진이 18년 만에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고전하고 있었다. 공급 설비는 과잉인데, 중국의 경기 둔화로 인해 수요가 급감하면서 원유를 정제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경기 회복으로 수요가 살아나면 마진이 개선되면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수출 비율이 높았던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도 "중국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 수출은 최근 12개월 연속 감소했다"며 "이는 중국 경기가 살아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자동차·가전 "별 영향 없을 듯"

반면, 자동차 업계는 긍정적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현지 생산 체제가 구축돼 있어 관세 여부에 영향을 덜 받는 데다, 최근 부진의 근본적 원인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기아차의 중국 내 부진은 일본·독일계 등 다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게 큰 원인"이라며 "중국 경기가 회복돼 수요가 살아나면 현대·기아차도 일부 반사이익은 보겠지만, 긍정적 효과를 직접 받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 부품 역시 현지 조립과 연계돼 있으므로, 현대·기아차가 부진한 한 수출이 증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가전·스마트폰 분야도 큰 영향은 없을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아예 미국에 세탁기 생산 공장을 가동하는 등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와 무관한 상황을 만들어놨다. 미국의 중국 화웨이 제재로 유럽 시장 등에서 반사이익을 누려온 국내 스마트폰의 경우엔 오히려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앞으로 화웨이에 대한 거래 제한 조치까지 풀리면, 다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부문 관계자는 "관세 부담으로 아이폰 가격이 올라가 삼성전자의 반사이익이 기대됐지만 이제 가격 인상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