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NBA(미국프로농구) 선수가 있다. 김치, 잡곡밥, 콩나물국 같은 음식이 생각났다면 틀렸다. 그의 다이어트식은 라면. 반찬으로는 떡볶이, 김밥을 먹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탄수화물 폭탄'이라며 먹지 말라고 권고했을 만한 식단이지만, 미국인에게는 건강식이라고 한다.

디욘테 버튼(25·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은 2017년 KBL(한국농구연맹) 원주 DB에서 한 시즌을 뛰었다. 한 경기 평균 약 23점을 넣어 그해 외국인 MVP(최우수선수)로 선정됐고, 원주 DB는 버튼의 활약 덕에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버튼은 현지 인터뷰에서 "한국 생활이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됐다"고 할 만큼 한국에 애정이 깊다. 특히 소셜미디어에 고추장, 간장 사진을 올리며 "너희는 이 소스 모를 거야"라는 글을 쓰는 등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다. 지난 10월 열린 현지 기자회견에서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살을 뺐다. 한국에서 음식을 제대로 먹는 법을 배웠다. 그곳에는 '정크 푸드'가 많지 않다. 거기서 시작된 식습관이 '눈덩이 효과'처럼 살을 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디욘테 버튼이 지난 10월 인스타그램에 “너희는 이 소스 모를 거야”라는 문구와 함께 고추장, 간장 사진을 올렸다(왼쪽). 그는 현지 기자회견에서 “한국에는 ‘정크 푸드’가 없다”고 했지만, 정작 즐겨 먹은 음식은 라면이었다.

하지만 버튼이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은 흔히 생각하는 다이어트 식단이 아니다. 원주 DB에서 뛰던 시절 그는 간식으로 즉석 식품을 즐겨 먹었다. 라면에 체다 치즈 세 장을 넣어서 먹는가 하면, 소위 '마약 김밥'과 떡볶이도 함께 먹었다. 원주 DB 이상범 감독이 미국으로 떠나는 디욘테 버튼을 잡기 위해 택배로 라면을 보냈을 정도였다. 구내식당에서 주로 먹던 식사는 스테이크. 밥과 불고기도 먹었고, 일정이 끝난 뒤 개인 숙소로 가서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추가로 먹었다. 원주 DB 관계자는 "아마 햄버거, 튀김 등을 주식으로 먹었을 디욘테가 라면을 건강식품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특히 라면과 떡볶이를 좋아해서 팬들이 즉석식품을 선물로 보내줬다"고 했다.

운동선수가 대식가라는 사실은 모두 알지만, 특히 미국 농구선수는 '칼로리 폭탄' 음식을 즐기기로 유명하다. 스테이크, 빵을 정규 식사로 먹고 수시로 피자, 햄버거, 도넛 등을 먹는다.

1980~1990년대를 풍미했던 찰스 바클리는 경기 시작 전후로 라지 사이즈 피자 서너 판을 먹었다. 신인 선수가 매일 고참 선수들에게 설탕 시럽으로 덮인 도넛을 나눠주는 관행도 있고, 경기 중간 하프 타임에는 미리 주문한 햄버거를 먹는 선수도 많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주전 센터 조엘 엠비드는 하루 한 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쿠키앤크림 밀크셰이크를 4잔씩 마신다. 그러니 라면과 떡볶이가 '웰빙 푸드'가 될 수밖에.

일반 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고칼로리 식단에 노출된 그들은 한국 라면을 건강식으로 인식한다.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 "라면(korean ramen)은 건강하다(healthy)"는 이야기가 많다. '맵긴 하지만 칼로리가 낮다' '한국에서는 불량 식품이라고 인식한다는데 의아하다'는 내용이다. 미국인이 즐겨 먹는 '크리스피 도넛' 한 조각 칼로리는 약 450㎉다. '인앤아웃' 햄버거 세트(햄버거+프렌치프라이+밀크셰이크)는 1600㎉에 육박한다. 라면 1개는 600㎉ 남짓. 국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나트륨 함량도 훨씬 덜하니, 일반 미국인에게는 저칼로리 건강식품이라고 불릴 만하다.

떡볶이, 라면 등은 한류를 타고 'K-푸드'라는 건강식으로 미국에 진출하고 있다. 농심, 풀무원 등이 라면을 필두로 지난해 '크로거(Kroger)' '코스트코(Costco)' 같은 대형 유통망에 입점했다. 오뚜기와 삼양식품도 올해 미국에 수출하는 라면이 늘었다. 각 사의 올 상반기 라면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15% 증가했다. 김태희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어릴 때부터 스테이크, 햄버거 등 단백질 위주 식사에 노출된 미국인에게 라면 같은 탄수화물 식품은 건강식으로 보일 만하다"며 "그렇다고 라면만 먹는 게 올바른 식습관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결국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