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연금 지급액을 과다하게 부풀려 예산안을 짜고, 여당은 예산 심의 과정에서 부풀린 금액을 삭감하는 방식의 눈속임 '예산 삭감 쇼'가 올해도 벌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방법으로 삭감액을 늘리고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였다"는 식으로 발표한 것은 대국민 사기극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풀렸다 맹탕 삭감, 눈속임한 정부

국회는 지난 11일 내년 국민연금 지급액을 27조34억원으로 편성한 정부안을 심의한 결과, 4000억원을 삭감했다고 밝혔다. 이 금액은 국회가 내년도 전체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삭감한 1조2000억원의 3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큰 규모다. 하지만 예산안 확정 과정을 보면 "삭감했다"는 표현이 무색해진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지급 예산으로 애초 25조2310억원을 편성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기재부는 국민연금 중기 재정 전망 등을 반영한다면서 이 금액에 1조7000억원가량을 붙여서 27조34억원을 정부안으로 최종 확정해 국회에 보냈다. 주무 부처가 예산을 올리면 기재부는 그대로 가거나 줄이는 것이 일반적 형태인데, 도리어 1조7000억원이나 대폭 늘린 것이다. 이런 이례적인 예산 편성을 거쳤기 때문에 국회 심의 과정에서 4000억원이 삭감됐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애초 복지부가 요청한 금액보다 1조3000억원이나 늘어났다.

이같이 정부가 예산안을 부풀리고 국회에서 삭감하는 방식은 올해(2019년도) 예산 편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복지부는 작년에 올 국민연금 지급 예산으로 21조7397억원을 편성했다. 기재부는 중기 재정 전망에 따라 예산액을 23조2893억원으로 늘렸고, 국회는 이 중 2700억원을 삭감했다.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와 국회가 국민연금 예산을 놓고 숫자 놀음을 통해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3%밖에 못 쓴 판문점선언 예산…내년에도 비슷한 규모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대북(對北) 예산 규모를 도리어 늘린 것으로도 나타났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가 4·27 판문점 선언(남북 정상회담)을 이행하겠다면서 책정한 올해 예산 6382억원의 집행률은 1.3%(81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올해 들어 북한이 일방적으로 금강산 관광 시설을 철거하는 등 남북 관계가 경색된 영향이 크다. 사용하지 못한 나머지 99%가량의 예산은 불용(不用) 처리되어 대부분 국고로 환수될 예정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통일부는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겠다면서 내년도 관련 예산도 5700억원가량 편성했다. 남북 정상회담 비용으로 14억6200만원을 따로 책정하기도 했다. 내년도 남북협력기금도 올해보다 9% 증액된 1조2056억원으로 확정됐다. 철도·도로 연결 등 경제 인프라 구축 예산이 4289억원에서 4890억원으로, 한반도 생태계 복원을 위한 산림협력 예산이 1137억원에서 1275억원으로 늘어났다.

◇한국당 "文 의장 꼼수로 法 근거 없는 소부장특별회계 신설"

자유한국당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예산 부수 법안보다 예산안을 먼저 통과시키는 '꼼수'를 쓰는 바람에 근거법도 갖추지 못한 불법 예산이 통과됐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2조원 규모의 소재·부품·장비경쟁력강화특별회계(소부장특별회계)는 근거법이 계류되어 있는 상황에서 예산부터 편성됐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의 한국당 송언석 의원은 "소부장특별회계는 법적 근거가 없는 무법 회계"라고 했다. 지난 10일 열린 국회 본회의 239건의 안건 가운데 예산안은 231번째였지만, 같은 날 저녁 본회의가 속개되자 문 의장은 내년도 예산안을 1번 안건으로 변경했다. 한국당은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