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이번 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청 황실의 아침, 심양 고궁' 전시가 시작됐다. 청 태조와 태종의 칼 등 중국 국보급 유물 13점이 포함돼 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지명 등 외래어 표기 때문에 고심했다. 국립국어원이 정한 외래어 표기법에는 "중국의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라고 돼 있다.

심양은 청 왕조 최초의 수도라는 역사 지명인 동시에 현재도 같은 한자로 표기되는 도시다. 국어원 규정대로라면 전시 제목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선양(瀋陽)'이라고 해야 맞는다. 하지만 심양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가 끌려간 곳으로 익히 배워 알고 있는 곳이다. 한 명이라도 더 익숙한 지명을 쓰는 게 전시 효과가 클 것 같아 결국 '심양'을 선택했다. 참고로 현재 교과서에서는 심양과 선양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외래어 표기법을 두고 심양과 선양을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만주어를 생각했다. 청 황실은 스스로 만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여러 면에서 노력했다. 궁궐 현판이나 중요 문서는 만주어와 한자를 함께 적었다. 하지만 현재 만주어는 중국 신장자치구 이리(伊犁)지역 시보족(錫伯族) 중 몇만 명만 사용할 정도로 사어(死語)에 가깝다. 만주족에서 발흥한 청 황실 주요 유물을 전시하는데 청 태조 '누르하치'나 태종 '홍타이지'처럼 몇몇 단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리식 한자음이나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언어의 처지는 서글펐다. 동시에 우리 말과 글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유물의 역사적 성격을 드러내는 용어 하나도 고심해야 하는 것이 박물관 전시다. 청대 초기 역사와 문물을 살피기에 좋은 이번 전시를 꼭 한번 관람하시기 바란다. 유물과 함께 전시 기획자의 문제의식도 찾아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